증거조작에 흔들리는 저널리즘

[언론 다시보기] 변상욱 CBS 대기자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국민의당이 제보를 거짓으로 조작해 네거티브 선거운동에 이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비난의 화살은 이를 그대로 전하거나 집요하게 반복보도한 언론에 겨누어지고 있다. 명예훼손을 다툴 때 ‘재출판의 원칙’이 있다. 피해를 입힌 내용을 인용한 다른 출판물에도 최초에 명예훼손을 저지른 출판물과 동일한 책임을 지운다는 것이다. 언론이 이 책임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건 공적인 기록이나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공인에게서 직접 취재했을 때이다. 그러나 추가 폭로나 새로운 증언이 없는데도 같은 내용을 반복해 다뤄 고의성이 다분하다면 법적 책임도 질 수 있다.


법적 문제는 차치하고 저널리스트로서의 도덕적 책임과 취재윤리를 따져보자. 사회적 여파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폭로나 정보제공을 기사화할 때 취재기자는 흔히 다음의 기준에 의해 판단할 것이다.


1. 주요 직책의 공인, 유명인에게서 나온 정보, 특히 공식브리핑은 그대로 받아써도 안전하다.
2. 이해관계가 얽힌 당사자들이 치고받는 공방전에서는 양쪽 걸 계속해 받아써도 큰 무리는 없다.
3. 공문서는 믿고 쓴다. 문서는 거짓말하지 않는 걸로 간주한다.
4. 서로 다른 두 곳에서 같은 내용의 정보가 등장한다면 어느 정도 안심하고 쓸 수 있다.


대부분 이 정도의 기준으로 기사를 써 나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고정관념이자 관례일 뿐 오류에서 벗어나는 확실한 기준이 아니다. 국민의당 녹음 조작, 국방부의 사드 반입 허위보고 등 최근의 사건들이 이 기준의 불안정성을 보여준다. 또 언론이 처한 환경이 바뀌며 시청자와 독자들은 더욱 엄격히 언론의 책임을 묻고 직접 검증에도 나선다.


결국 국민의당 사건을 예로 든다면 기자는 브리핑에서 제공되는 설명과 관련해 근거자료를 철저히 요구해야 한다. 제시된 근거자료가 조작된 것인지 신뢰도가 어느 정도인지도 즉시 검증에 나서야 한다. 검증은 시간의 제약이 따르니 최소한 증거의 출처, 제보자의 신원을 밝히라 요구해야 한다. 물론 밝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당직자 중 누가 제보자를 만나고 왔는지 당직자 중 누구의 지인인지 보증을 확보해 두어야 한다. 보증을 서지 않겠다 하면 시쳇말로 ‘도망치는 사람이 범인’이다. 제보자의 신원을 보증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지도 따져 물어야 한다. 누구에게로 제보가 들어와 누가 어떤 방법으로 이 제보의 신빙성을 검토했는지, 발표 이전 당의 공식 절차는 어떻게 거쳤는지도 물어야 한다. 기자의 이런 질문 공세가 거쳐야 할 관문으로 존재할 때 어떤 조직에서든 가짜 증인, 조작 증거, 허위 브리핑을 이전보다 더욱 통제하게 될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경우 2003년 제이슨 블레어의 엉터리 기사 사건을 치르면서 ‘퍼블릭 에디터’직을 신설했다. 편집진으로부터 독립된 지위와 독립된 위치에서 기사를 검증하고 오류를 지적하는 직책이다. 그리고 지난달 15년 만에 ‘퍼블릭 에디터’직을 없애버렸다.


주목할 것은 ‘퍼블릭 에디터’직을 없앤 이유다. 미디어 환경이 크게 바뀌면서 ‘퍼블릭 에디터’로는 실시간으로 쏟아져 나가는 기사의 검증과 공공적 판단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 대신 뉴욕타임스는 소셜 미디어의 팔로워들이나 인터넷 독자들이 언론을 감독하는 감시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사무실에서 에디터가 검증하기보다는 독자와 미디어 시민들에게 감독 권한을 부여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살피며 기사를 검증하고 컨트롤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역시 2013년에 옴부즈맨을 없앴다. 속보경쟁을 지양하고 공정하고 정확한 보도를 위해 SNS와 온라인을 통한 독자의 집단지성을 끌어들이겠다는 취지다. ‘퍼블릭 에디터’조차 거리가 먼 우리 현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독자와 시청자의 신뢰를 잃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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