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정포와 순방, 1.5 트랙의 공통점은?

[스페셜리스트 | 외교·통일] 왕선택 YTN 통일외교 전문기자· 북한학 박사

한반도는 남북 분단과 정전 체제 모순이 동시에 작동하는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외교, 안보 분야에서 민감한 사건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이에 따라 복잡다단한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새로운 용어를 만들거나 기존 용어를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그런데 기존 용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가하는 경우는 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최근 자주 사용한 용어 중에서도 더욱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던 사례를 지적할 수 있다.


장사정포(長射程砲)는 북한이 휴전선 인근에 배치한 장거리 야포를 지칭한다. 문제는 장사정포가 특정한 종류의 야포가 아니고, 북한 야포 가운데 자행포(자주포)와 방사포(다련장로켓포)를 총칭하는 용어라는 점이다. 자행포와 방사포 중에서도 사거리가 50km 이상으로 서울 타격이 가능한 장거리 야포가 장사정포다. 마치 장사정포라는 종류의 야포가 존재하는 것처럼 묘사할 경우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 미국 방문 보도에서 자주 사용된 ‘순방’도 논란 대상이다. 순방(巡訪)은 주로 두 개 이상의 나라를 차례로 돌아가면서 방문할 때 사용한다. 이번처럼 미국 한 나라에, 방문 도시도 워싱턴 한 곳이라면 순방이라는 말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 대통령 외국 방문 행사에서 순방 사례가 자주 있지만, 이번의 경우 순방은 적합한 용어가 아니다.


1.5트랙이라는 용어는 최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북한 관리들과 미국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자주 사용됐다. 그런데 1.5트랙 행사는 2개국 이상 대표단이 참여하는 민간 행사에 정부 관리도 참석하는 경우를 말한다. 참고로 트랙1은 정부 관리들이 참석하는 회의, 트랙2는 민간인만 참석하는 회의를 의미한다. 오슬로 행사에 북한에서 관리가 참석했지만, 미국에서는 민간 전문가만 참석하고 정부 관리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오슬로 행사를 1.5트랙으로 소개하는 것은 마치 미국 관리도 참석한 것처럼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하지 않다.


‘4강 외교’라는 용어도 고민이 필요하다. ‘4강’이라는 말은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미국과 나머지 3개국을 동일한 반열로 묶는 것은 강대국 의미를 왜곡할 수 있다. 중국이 대국이고 강대국으로 변모하고 있지만, 미국 군사력에 비하면 여전히 빈약하고, 개인 소득 수준도 부족하다. 러시아는 군사력이 크지만 경제력에서 부족하다. 일본의 경우 미일 동맹의 제약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강대국과 거리가 있다. 반면에 4강 용어는 군사력이나 경제력, 민주주의 발전 등에서 세계 15위권 이내에 포함되는 한국 위상을 과도하게 폄하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이에 따라 4강보다는 ‘주변 4국’이라는 말이 더 적절한 것으로 사료된다.


미사일 용어 중에서도 정리가 필요한 것이 있다. 미사일 중에서 IRBM(Intermediate Range Ballistic Missile) 사거리는 3000km~5500km, MRBM(Medium Range Ballistic Missile) 사거리는 1000km~3000km다. 그런데 보도를 보면 IRBM과 MRBM을 중장거리와 중거리로 번역하는 경우가 있지만, 중거리와 준중거리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어서 혼란을 초래한다. 번역 차원에서 보면 Medium Range를 준중거리로 표현하는 것은 억지스럽다는 점에서 IRBM은 중장거리, MRBM은 중거리 미사일로 통일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