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2부 취재AD 채용공고’ ‘신규 예능프로그램 FD 모집’ ‘드라마 제작1부 AD 채용공고’ 미디어 전문 구인구직 사이트엔 하루가 멀다 하고 파견계약직을 모집하는 글이 올라온다. 근무형태별 채용정보로 들어가 ‘파견직’을 클릭하면 현재 진행 중인 공고만 4일 기준 92개다. 파견업체가 올린 이들 공고의 급여와 근무시간, 전형방법은 대동소이하다. 100만원 대의 급여, 탄력적인 근무시간, 학력·경력 무관. 정규직을 꿈꾸고 있거나, 꿈꿨던 이들은 절실한 마음으로, 또는 경험을 쌓기 위해 파견업체의 문을 두드린다.
매달 10%씩 수수료 떼는 파견업체
언론사, 특히 방송사에선 이제 파견업체를 통하지 않고는 방송이 굴러가지 않을 정도로 파견계약직이 방송 노동시장의 한 축이 됐다. 2007년 파견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미디어산업에서 파견이 허용된 업무로는 감독 및 연출가, 기술 감독, 아나운서, 리포터, 촬영기사, 음향 및 녹음기사, 사진기자 등 다양하다.
실제 파견허용업무가 확대된 이후 방송업계를 중심으로 파견계약직 규모는 급격히 증가했다. 2011년 발간된 <방송산업 비정규직 근로실태 연구-K방송사를 중심으로> 논문을 보면 K방송사의 파견계약직은 2006년 310명에서 2011년 770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 공시정보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데 용역과 하도급이 섞여있기는 하지만 KBS의 2017년 간접고용 규모는 706명에 달한다. 이는 다른 방송사 역시 마찬가지다. MBC와 SBS도 2017년 각각 483명과 187명의 파견·용역·하도급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견업체의 규모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이 업계의 ‘빅3’로 불리는 C사와 P사, M사는 2017년 기준 각각 1224명과 413명, 945명의 기간제 근로자를 두고 있다. 특히 M사의 경우는 2014년에 비해 기간제 인력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늘어나는 인력만큼 파견업체가 가져가는 ‘돈’도 많아진다. 파견계약직을 공급하고 관리비(수수료)를 떼 가기 때문이다. 파견계약직으로 일했던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파견업체가 매달 떼 가는 관리비는 대략 20~30만원 사이였다. 지난해와 올해 TV조선과 MBN에서 AD로 일했던 A씨는 “매달 135만원 언저리를 받았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근로계약서에는 180만원을 받는 것으로 돼 있었다”며 “4대 보험을 제외하고 그만큼 수수료를 떼 갔던 것”이라고 말했다. 한 방송사에서 VJ로 일하고 있는 B씨도 “수당 합쳐서 총계가 200만원이라고 쳤을 때 공제금액이 월 평균 18~20만원 정도”라며 “10% 정도 떼 가는 것 같다”고 했다.
파견업체가 관리비를 가져가는 만큼 특별히 인력 관리를 하는 것도 아니다. 한 방송사에서 AD로 일하고 있는 C씨는 “파견업체에도 전담 회사마다 매니저들이 따로 있긴 한데 면접이나 연말정산 할 때 빼고는 거의 연락을 안 한다”며 “파견업체에서 공지하는 근무환경도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다. 괜찮다고 생각해 들어왔는데 막상 일하다 보면 근무시간이나 환경이 너무 달라 그만두는 친구들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파견계약직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보도전문채널에서 정규직 영상기자로 일하고 있는 D씨는 “파견계약직 대부분이 ‘을’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얘기도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파견업체가 언론사에 소개시켜주는 첫 달에만 수수료를 내게 하거나 매달 3% 미만의 관리비를 가져가야 맞다. 말도 안 되는 관리비 문제부터 해결하고 언론계의 비정규직 문제도 차근차근 손 봐야 한다”고 말했다.
파견노동자 차별하는 언론사
파견계약직들이 열악한 처우에도 파견업체의 문을 두드리는 데는 경험을 쌓거나 돈을 벌려는 이유도 있지만 이 ‘바닥’에서 정규직 고용이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MBC, YTN, SBS 등에서 파견계약직 AD와 FD로 일했던 E씨는 “어렸을 땐 잘 몰랐는데 일하다 보니 파견노동시장의 구조 자체가 일하는 사람에게는 저임금을, 노는 파견업체에는 고임금을 주는 불합리한 구조라는 걸 알게 됐다”며 “하지만 워낙 이쪽 업계에서 공채가 안 뜨다 보니 방송경험을 쌓아보자는 식으로 파견업체 문을 두드리는 경우들이 많다”고 말했다.
언론사 또한 인건비 지출 감소와 효율적인 인력 운용 등을 위해 파견계약직을 선호한다. 방송사 한 관계자는 “SNS 등 트렌드 업무의 경우 젊은 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에 계속 젊은 파견계약직을 쓰는 경우가 있다”며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언론사 인력구조와 관계가 있다. 대부분의 방송사 인력이 역 피라미드 구조다보니 인건비 지출이 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기 힘들다”고 했다.
장영석 전국언론노동조합 노무사는 “VJ 100명을 확보하고 있는 파견업체가 있다고 치면 거기 연락만 하면 따로 채용공고를 낼 필요 없이 노동자가 온다. 쓸모없으면 쉽게 교체할 수 있고 월급도 적게 줄 수 있는 등 효율적으로 인력 운용을 할 수 있다”며 “또 직접고용이 아니기 때문에 사고가 나도 책임질 일이 없다. 그런 부분이 원청으로선 굉장히 큰 이득”이라고 했다.
그러나 언론사가 이득을 취하는 사이 파견계약직은 열악한 임금과 혹독한 노동, 사용업체에서의 모욕적 언사와 차별 등으로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A씨는 “파견계약직으로 일하며 언제나 ‘너는 곧 나갈 사람이라’ ‘계약직으로 들어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등으로 시작하는 모욕적 언사를 들어야 했다”며 “주말에 12시간씩 일해도 수당이 3만원밖에 안 나오는 등 ‘열정페이’를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C씨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데 고용 형태별로 명절 상여금이 3배씩 차이가 났다. 그런 걸 서로 얘기한 후엔 사무실 분위기도 이상해졌다”며 “파견계약직을 계속해서 쓰면 매번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업무에 적응해야 해 그만큼 언론사도 사고 발생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언론사의 파견계약직 규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언론노조가 2015년 11월 작성한 파견법 보고서에선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사에 대한 방송평가에 관한 규칙에서 ‘비정규직 고용 평가’ 항목 신설과 △사업장별 비정규직 실태조사 진행 후, 개선 과제를 단체협약이나 사규에 적용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언론노조 관계자는 “내년 전수조사에 대비해 몇몇 언론사들의 노동 실태 조사를 준비하고 있다”며 “파견계약직 관련해선 용어를 정리하는 중이다. 아직 설문 초안을 잡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