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싸웠는지 해답을 얻고 싶었다"

박사학위 취득 박성호 MBC해직기자
기계적 균형 공정성으로 포장
변화 무관심…40년째 제자리
공정보도 위한 쇄신 의지 중요
불편부당한 뉴스 만들고 싶어

“내가 그동안 무엇을 위해 저항하고 싸웠는지, 다시 현장에 돌아간다면 어떻게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뉴스를 만들 수 있을지 해답을 얻고 싶었습니다.” 해직 5년차에 접어든 박성호 MBC 기자가 <공영방송 뉴스의 불편부당성 연구: BBC와 KBS의 선거보도를 중심으로>라는 주제의 박사 학위 논문을 펴냈다. 지난 2012년 공정방송 사수를 위해 170여일간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이후 공정보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다. 박 기자는 “연구를 하면서 공정보도를 바라보는 관념이 다차원적으로 넓어졌다”며 “기자를 할 때는 가장 큰 관심이 이슈의 누락이나 축소, 배제 등을 경계하고 맞서 싸우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단순히 ‘수학적 균형’을 맞추는 것에서 벗어나 의견의 폭과 다양성을 기사 안에서 구현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기자는 논문에서 공정성, 즉 ‘적절한 불편부당성’의 기준을 크게 세 층위로 나눠 설명한다. 의견의 폭과 다양성을 아우르는 ‘듣기의 불편부당성’과 맥락과 배경, 의도 등을 짚어주는 ‘설명하기의 불편부당성’, 인터뷰이가 하는 말이 타당한 지를 검증하기 위해 비판적으로 질문하는 ‘묻기의 불편부당성’이다. 박 기자는 “듣기의 불편부당성은 기자들이 우리 사회에 충돌하는 목소리를 어떻게 균형을 잡아서 들을 것인지, 이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다양하게 반영하고 참여할 것인지의 문제를 포괄하는 개념”이라며 “한국에서 공정성 논의는 균형 잡는 데만 매몰돼 있다. 균형이 필요한 이유는 진실을 제대로 알려주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인데, 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균형과 중립이 전부가 아니고 탄력성과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이걸 무시하고 단순히 5대5로 나눠서 적용하면 진실을 왜곡하는 또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거든요. 국내 공영방송의 책임자들은 정치적 종속에 발목이 잡혀있고, 방어적 수단으로 기계적 균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요. 의도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구조죠.”


작위적인 균형 보도는 선거 보도에서 두드러진다. 지난 1995년 MBC에 입사해 취재 경험의 절반을 정치부에서 몸담은 박 기자는 국내 선거 보도의 현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특히 영국 공영방송 BBC의 선거보도와 비교하면 한계가 드러난다. 박 기자는 “우리 언론은 대개 ‘정당과 후보자의 경쟁 구도’로만 파악한다. 후보자가 주인공이고 시민은 지나가는 행인에 불과하거나 아예 보이지 않는다”며 “반면 BBC의 시민 취재원은 우리보다 압도적으로 많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적극적인 참여자로 등장한다. 기자 또한 정치인에게 공격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듣기와 설명하기, 묻기의 불편부당성 세 가지를 충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보도를 위해서는 언론의 끊임없는 쇄신 의지, 실험 정신이 중요해요. BBC는 공영방송으로서 사장부터 보도국장, 평기자까지 저널리즘 철학이 분명히 잡혀있거든요. 수십 년간 무수히 비난을 받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변화를 거듭한 결과죠.” 박 기자는 “MBC 가 신뢰를 회복하려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뉴스를 추구해야 한다”며 “복귀하면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내부 구성원들 간의 토론을 활성화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박 기자는 오는 21일 낮 12시에 고려대학교 미디어관 602호에서 열리는 <BBC뉴스는 어떻게 불편부당한 뉴스를 만드는가>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을 예정이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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