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키우는 정부의 '재정적 해이'

[스페셜리스트 | 금융]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차장·신문방송학 박사

 국가의 파산(sovereign default)은 생각보다 잦은 일이다. 16세기 무적함대를 앞세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던 스페인은 과도한 왕실 운용과 전쟁 비용 탓에 1627년 파산을 선언했다. 세르반테스의 명작 소설 ‘돈키호테’는 당시 경제 위기에 따른 시대상의 풍자였다. 이집트는 19세기 말 국가 파산으로 인해 식민 생활을 경험하기도 했다. 지중해와 홍해의 관문인 수에즈 운하 건설이 그 역사적 비극의 도화선이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와 카르멘 라인하르트 메릴랜드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800년 이후 세계적으로 180건이 넘는 국가 파산이 있었다.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에선 각각 10번이나 발생했다. 우루과이 코스타리카 브라질 칠레는 9번, 아르헨티나 페루 멕시코 터키는 각각 8번의 부도를 겪었다. ‘석유 부국’ 베네수엘라의 국가 디폴트 위기는 현재 진행형으로 ‘최다 도산국’ 기록 경신을 눈앞에 두고 있다.


국가 파산은 재정 적자의 결과다. 빚이 많은 가계 살림이 파산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부가 수입보다 많은 지출을 하면 국가 부채가 쌓이고 파산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고 재정 적자가 ‘절대 악’은 아니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뉴딜 정책으로 대변되는 케인즈 처방 이후 ‘유연한 재정정책’은 주요한 경기조절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재정 적자에 따른 정부지출 증가는 단기적으로는 승수효과를 통해 총수요를 자극, 경기를 부양하고 국민소득을 높인다. 대부분 정부가 긴축(흑자 재정)보다는 팽창정책(적자 재정)을 선호하는 이유다. 하지만 마약에 다름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과 자본 구축 등 큰 부작용을 몰고 온다. 더욱이 당대의 빚은 후대의 부담으로 남는다. 미국 등 많은 나라가 재정건전화 관련법을 만들어 ‘재정 포퓰리즘’을 억제·관리하는 이유다.


한국은 1970년대 이후 경제성장 기간 꾸준히 균형재정 기조를 유지했었다. 1990년대에는 GDP 대비 부채비율이 10%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튼튼한 재정은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이후 고삐가 풀려버린 정부의 ‘재정적 해이(fiscal hazard)’는 수위를 높여갔다.


지난해 한국의 국가 부채는 1년 만에 140조원가량 늘며 1433조1000억원을 기록, 사상 처음으로 1400조원을 넘어섰다. 국가부채의 GDP 대비 비중은 38.3%에 달했다. 정부가 빌린 돈만을 나타내는 국가채무도 665조원을 넘었다. 젖먹이를 포함한 국민 1인당 빚이 1293만원에 이른다는 의미다.


문제는 규모보다 속도다. 고령화로 인한 사회복지비 등 비생산적 지출은 급증하는 반면 잠재성장률 하락으로 세수증가율은 둔화되는 추세다. 국가 부채의 증가 속도가 가팔라질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는 연일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중기·소상공인들에게 최저임금 인상분을 보조하고,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에 따른 손해배상도 나랏돈으로 틀어막기로 했다. 소액·장기 연체 채권자의 빚 탕감에도 재정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건강보험 보장을 확대하고 기초연금을 올리는 데는 각각 30조원과 21조원의 돈이 들어간다는 추산이 나온다.


적자 재정은 중장기적으로 조정·관리한다는 전제 아래 당위성을 갖는다. 누적되는 재정 적자와 정부 부채는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자 재정에는 반드시 향후 이를 해소해 건전재정을 회복하는 방안이 함께 강구돼야 한다. 나랏돈의 씀씀이를 늘리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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