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공범자들엔 인상적인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한 명은 김민식 PD이고, 다른 한명은 이용마 기자다. 2012년 MBC 노조가 170일 간 장기 파업을 하던 때 두 사람 모두 노조 집행부였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두 사람의 캐릭터는 굉장히 다르다.
김민식 PD가 참신한 아이디어와 끼로 똘똘 뭉친 캐릭터라면, 이용마 기자는 암 투병 중에도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해 팩트만을 건조하게 나열하는 캐릭터다. 너무나 달라 보이는 이 두 캐릭터, 하지만 이 두 캐릭터는 현재 MBC 구성원들이 처한 어려운 현실과 그 현실 속에서 느끼는 극단적인 두 감정을 상징한다.
울분과 분노는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지만 겉으로는 어떻게 해서든 언론인다운 냉정함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지난 9년의 세월 간 MBC 구성원들의 심장을 관통했다. 이런 양립하기 어려운 극단적인 두 감정을 품고 사는 일 자체가 일단 마음의 병인데 MBC 구성원들은 그 상태에서 계속해서 더 나쁜 부당함과 부조리가 펼쳐지는 걸 9년간 계속 목도해야 했다.
바로 이럴 때 분노와 울분은 자기 자신을, 자신의 무력함을 향하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인 자신을 혐오하고 바뀌지 않는 현실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에게 물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할퀴며 깊은 죄의식에 도달하게 된다.
“이용마 기자가 암에 걸린 와중에도 나는 드라마나 만들고 있었던 거였다…암투병 소식을 들었을 때 더 이상 그렇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페이스북 라이브까지 하며 사장을 물러나라고 끊임없이 외치는 너무나도 발랄한 김민식 PD가 이렇다면, 다른 MBC 구성원들의 마음속 상처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언론 자유는 중요하고 공영언론의 역할은 더 없이 중요하지만, 그 언론 안에서 일하는 건 결국 한 명 한 명의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힘을 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문제는 지난 9년 간 MBC 구성원들이 지녔던 바로 자신에 대한 믿음을 경영진이 끊임없이 파괴했다는 사실이다.
스케이트장 관리자로 부당 전보된 이우환 PD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악랄한 예에 가깝다. 왜냐하면 이 PD가 계속해서 스케이트장 관리 일을 부정하게 되면, 결국 거기에서 일하던 주변 동료들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부당 전보에 항의하는 것이 주변 동료를 무시하게 되는 일로 왜곡되어지는 딜레마적 상황. 자기혐오에 더해 주위 동료로부터도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되는 상황을 사측이 강요한 셈이다.
결국 모든 회복은 스스로에 대한 그리고 동료에 대한 신뢰 회복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사실 부당한 권력이 노린 칼끝도 바로 그 지점이기도 하다. MBC만 그런 게 아니다. 저항하는 이들을 권력이 제압하는 핵심적인 방법이 바로 저항하는 이들 사이에 반목을 형성하고 궁극적으로는 저항하고자 했던 스스로를 혐오하게 만드는 것이다. 권력이 휩쓸고 간 자리엔 그래서 시간이 오래 지나도, 심지어 그 권력이 사라져도 내부자들간의 끊임없는 반목과 다툼이 이어지고 깊은 허무주의와 냉소가 지속되는 이유다.
영화에서 김민식 PD가 가장 격정적으로 인터뷰하는 내용 속에 담긴 우려도 바로 이 지점을 향해 있다. 김민식 PD에게 아내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만약 당신이 이렇게까지 외쳤는데도 주위 동료들이 아무 반응이 없다면 당신만 ‘돌아이’가 되는 거야.” 돌아이는 김민식 PD가 아니라 그들을 탄압한 이들로 결론이 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