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독자는 긴 글을 읽지 않는다? 한국일보 기획취재부 기자들은 오히려 “길면 길수록 읽힌다”고 말한다. 김희원 부장과 박선영·박상준·김혜영·박재현 기자가 8개월간 실험하며 내린 결론이다.
지난 1월 꾸려진 팀은 주제 하나로 매주 토요일 1면 커버스토리와 속지 2~3개면을 채운다. 기사 분량이 한 꼭지당 원고지 30~40매에 달하지만 온라인 조회수는 많게는 100만을 웃돌고, 댓글도 수천개씩이다. 사실 새로운 이슈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 팬덤, 비혼(非婚), 탈(脫)서울, 캠퍼스 물가, 저녁 있는 삶, 몰카 등 이미 여러 번 나온 얘기다. 그런데 이들의 콘텐츠가 왜 ‘먹히는’ 걸까.
기자들은 주제 자체보다 새로운 접근 방법 덕분이라고 자평했다. 비혼의 경우 단순히 현상 설명에 그치지 않고 비혼을 택한 70대와 30대의 대담 방식으로 색다른 이야기를 담았다. 서울을 떠나 강원도로 이주한 30대 부부의 모습에선 욜로(YOLO)가 아니라 청년 주거불안, 지방분권, 부동산 문제를 짚었다. 다른 주제들도 그렇다. 이미 수차례 기사화된 이슈라면 더 깊게, 독자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자는 것이다.
“독자들이 가려워하는 지점을 파악하는 게 관건이에요. 그 지점을 정확하게 타격하면 기사는 길면 길수록 좋다고 확신합니다. 기자의 문제제기가 내 삶과 긴밀히 연결됐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온라인에서도 40매든 50매든 단숨에 읽고 공감하거든요.”(박선영)
김혜영 기자도 같은 생각이다. “지난 대선 직후 <유승민, 심상정에 던진 ‘이토록 값진 422만표’> 기사에서 두 후보가 낙선할 걸 알면서도 투표한 유권자들을 분석했어요. 그때 한 독자가 ‘한국일보에 내 마음을 들킨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우리의 방향이 맞구나, 뿌듯했죠.”
독자의 공감을 얻은 기사는 생명력도 길었다. 몇 달 전 출고됐던 게 SNS에서 다시 회자되거나 더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부서 정기회의는 주3회지만 옆자리 국제부에 미안할 정도로 끊임없이 대화하고 고민한 결과물이 빛을 발한 것이다.
“기사뿐 아니라 시각물에도 굉장한 공을 들여요. 매주 전담 편집기자, 사진부, 그래픽디자인팀과 회의를 합니다. 그래서 더 완성도 높은 콘텐츠가 나온다고 자부해요. 출입처에 있을 땐 바빠서 엄두도 못 냈던 아이템을 취재하면서 보람을 느낍니다.”(박상준)
부서 막내인 1년차 박재현 기자는 다양한 분야를 다루며 성장하는 기분이다. “몰카 관련 기획이 나가고 3일 후, 문재인 대통령이 몰카범죄 처벌 강화를 주문하면서 제 기사 일부를 인용해 말하더라고요. 제가 쓴 기사가 정책에 반영되다니! 기자 되길 잘했다 생각했습니다. 하하.”
김희원 부장은 “우리 부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 신문사들에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길더라도 독자의 마음을 읽는 기사라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최적화 콘텐츠는 이제 신기루가 된 것 같아요. 허상을 찾으려니 답이 안 나오는 것 아닐까요? 기본에 충실한다면 지면이나 온라인에서나 먹히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박선영)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