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압구정 성당 인근에 자리한 독서클럽 ‘트레바리’. 10평 남짓한 조그마한 공간에서 20여명의 젊은 남녀가 진지한 설전을 벌인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묘사한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토론하는 자리다. 생김새와 나이, 직업 등도 전혀 모르던 이들이 주말이라는 황금 같은 시간에 비좁은 방에 왜 모이게 된 걸까.
“허무, 무기력, 냉소, 외로움 이 네 가지가 요즘 젊은이들의 가장 큰 고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사명감을 잃어버린 세대가 아닐까요. 예전만 해도 가난과 풍요로움, 독재와 민주주의와 같은 개념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판단하기 힘겨운 상황인 것 같아요. ‘생계유지를 위해 이걸 하고 있나’와 같이 자괴감, 허무감에 많이 빠져있는 거죠.”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는 지난 4일 기자협회보와의 인터뷰에서 “트레바리가 직장인들의 이러한 고충을 해소하는 장이 됐으면 한다”며 “충분히 주관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회원들의 후기도 남다르다. ‘제 인생은 트레바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트레바리를 하면서 제가 점점 좋은 사람이 돼가고 있는 것 같다’ 등의 메시지다.
지난 2015년 9월에 4개 클럽, 회원 80명으로 시작한 트레바리는 현재 86개 클럽, 약 1300명으로 규모가 훌쩍 커졌다. 오는 9월부터는 140개의 클럽을 개설해 회원수 2000명을 넘기는 게 목표다. 문학·영화·음악부터 정보기술(IT) 트렌드 등 방대한 주제의 클럽은 시즌(4개월) 단위로 운영되고 멤버십 회비(19만원 또는 29만원)를 내고 독후감을 써야 참여할 수 있다.
“사회의 건전성을 위해서 뭔가를 배우고 지적 능력을 키우는 건 점점 중요해질 거라 생각해요. 현 시점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교육해주는 프로그램은 미디어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는 거죠. 사람들이 기사를 정독하면 현명해지거나 최소한 뭐가 중요한지 알아야 하는데, 미디어가 건강하지 않으니 악순환이 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독서토론이 뉴스의 홍수 속에서 소화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윤 대표는 “수많은 텍스트와 영상 콘텐츠를 잘 소화시키고 있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며 “독서토론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주관을 얻을 수 있고 생각의 편린들도 정리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기자도 마찬가지에요. 독서클럽과 같은 취미는 심도 있는 기사를 쓰거나 쟁점을 다룰 때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일단 ‘독자’를 만날 수 있잖아요. 취재 중에 만난 극적인 상황을 전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접해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허무, 무기력, 냉소, 외로움으로 고통 받는 젊은 기자들에게 추천합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