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행동하는 만화가였다. 따스한 작가였다. 그걸 기억했으면 한다.”
시사만화가 고(故) 백무현 화백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년. 늦깎이 대학원생 백 화백과 사제의 연을 맺었던 손기환 상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는 고인의 추모전을 기획한 배경을 이처럼 밝혔다. ‘당신이 이 세상에 더 이상 없다’는 사건 발생 전엔 감히 우리가 실감할 수 없기 때문에, 당신의 부재라는 질문보다 답이 먼저 올 수는 없어서, 언제나 뒤늦을 수밖에 없는 얘기들. “시사만화 중 그만큼 활동적이고 끝없이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하면서 따뜻한 감성으로 세상을 바라본 경우는 드물었어요. 너무 거창한 의미보다 작게라도, 마음으로 기억하고 잊지 말자, 고인의 작업을 정리해보자는 겁니다.”(손 교수)
고인은 분명한 시각을 가진, 천생 ‘시사만화가’였다. 1988년 ‘평화신문’ 창간과 함께 시사만평을 연재했고 ‘언론노보’, ‘월간 말’ 등 진보적 매체에 작품을 선보였다. 1998년부터 15년간 ‘서울신문’에서 ‘백무현 만평’을 통해 정치사회문화 이슈를 풍자했다. 전직 대통령들을 만화로 그린 ‘대통령 연작’을 남겼다.
백 화백의 ‘막내 후배’이자 추모전의 큐레이터를 맡은 안종만 작가는 “선배는 판매 목적이 아니라 만화를 그려야 되는 역사적 가치를 본인 스스로 증명했다. ‘만화 박정희’는 ‘정의는 불의를 기록한다’, ‘만화 전두환’ 때는 ‘우리 주변 곳곳에 전두환이 살고 있다’는 게 카피였다”며 “기억하고 계승할 가치들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전시도 소박한 연출에 담긴, 그 가치에 중점을 두려 한다”고 부연했다.
만화 컷 바깥의 현실에서도 그는 꿋꿋이 자신의 ‘만화’를 그려 간 ‘행동가’였다.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 회장을 지내고, 광주·전남언론노조 의장을 맡기도 한 고인은 2012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대위 대변인을 거쳐 2016년 20대 총선에서 여수을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불태운 그는 암 투병 끝에 그해 8월15일 하얗게 사그라들었다. “안 될 거 알면서도 지역구에 내려간 것도 그렇고 사사로운 이득도 하나도 못 챙기는, 선배는 바보였다”고 설인호 화백은 말했다. 고인이 ‘광주매일신문’ 만평가로 왔을 당시 인연으로 평생 가까이 지낸 그는 부고 소식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20년 만에 그렇게 울어본 거 같다”며 “다그치고 화를 내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꼼꼼히 가르쳐 주는 스타일이었다. 후배들에게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공손하고 겸손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지역에서 민중만화운동을 하던 후배들이 선배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것은 애도인가. 단언컨대 그렇다. 떠난 자를 깔끔하게 잊고 일상을 잘 사는 것, 떠난 사람을 가슴에 남기는 것 모두 애도다. 이를 위해 필요한 전제. 잊기 위해 기억하기, 그리고 기억하기 위해 잊기.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상명대 예술디자인센터 1층 전시실에서 열리는 추모전은 그런 자리다.
이번 추모전에는 백 화백의 생전 작품과 유품, 기록물 등이 전시된다. 동료작가들의 추모작 120여점도 함께 자리한다. 결국 여느 책 본문 아래 뒤늦게 따라올 주석처럼 고인의 생에 말을 보태고 기억하는 자리. “돌아보면 백 작가에게 현장에 대해 많이 배운 셈이에요. 생전 그런 전시를 가져본 적이 없어 1주기가 되면 꼭 전시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면에선 결국 촛불혁명에 몸을 쏟아부은 거 아닌가 싶어요.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고 아쉽죠.”(손기환 교수)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