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안 한다' 오명 벗고 질문 쏟아낸 기자들

[청와대 기자들이 말하는 대통령 100일 기자회견]
출입기자 '누구나' 참석…예전보다 2배 많은 인원
"각본 없는 형식 좋았지만 시간 부족해 아쉬움 많아"

“기자생활 10여년 만에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지난 17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한 일간지 A 기자는 질문 기회를 얻으려 기자 수십명이 동시에 손을 드는 모습이 낯설었다고 했다. 그는 “기자들도 대통령과의 소통이 고팠던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는 구조적 한계가 많았고 기자들은 질문하지 못해 비판받았다.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전임 정부, 그때 기자들과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줬다”고 말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비교해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풀기자단, 1사 1인 같은 제한 없이 청와대 출입기자라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었다. 이날 내외신 기자 250여명은 그동안 대통령 기자회견이 열렸던 춘추관 2층 브리핑룸 대신 영빈관에서 문 대통령과 마주했다. 회견은 질문자, 질문 내용을 사전에 조율하지 않은 ‘프리스타일’ 형식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도 청와대를 출입하고 있는 김두수 경상일보 기자는 “기자회견의 전체적인 패턴이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김 기자는 “지난 9년간 대통령 기자회견은 풀기자단만 취재할 수 있었고 참석 인원도 100여명 정도였다”며 “이번엔 문턱이 대폭 낮아져 두 배 이상 늘어난 250여명이 참석했다”고 전했다.


전임 정부부터 청와대를 담당해온 이충재 데일리안 기자는 기자회견 형식보다 기자들의 변화가 눈에 띄었다고 했다. 이 기자는 “박 전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역할은 미리 준비된 질문과 답변을 받아쓰는 것에 불과했다. 긴장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며 “이제 기자회견은 질문하러 가는 자리가 됐다. 대통령을 향해 질문하지 못할 때마다 어쩔 수 없었다고 위로했던 시간은 끝났다”고 말했다.


이 기자의 설명대로 이날 회견은 질문하는 자리였다. 참석한 기자 대부분은 대통령에게 질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손을 들었다. 질문자를 지명하는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을 향해 손을 흔들거나 그와 눈을 맞추려는 모습도 있었다. 오전 11시부터 65분간 진행된 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외교안보, 정치, 경제, 사회분야 15개 질문에 답했다.


그중 언론 관련 질문도 포함됐다. 신호 YTN 기자가 ‘공적 소유구조를 가진 언론의 공공성·공정성 확보 방안’을 물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정부에서 공영방송을 정권의 목적으로 장악하려는 노력들이 있었고 현실이 됐다”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법안 통과에 힘을 모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 기자는 “다들 질문을 생각해왔을 텐데 저는 이것만 준비했다. 상황이나 관심도를 볼 때 YTN 기자로서 질문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그간 정부부처 기자회견에서도 사전에 공보실이 질문자나 질문 요지를 파악하곤 했다. 앞으로는 이런(문 대통령 기자회견) 방향으로 가야 할 것 같다”고 제안했다.


기자들은 각본 없는 형식에 긍정적인 반응이었지만 부족했던 시간에는 아쉬워했다. 방송사 4곳(SBS, YTN, JTBC, 아리랑TV), 지역지 3곳(경기일보, 강원일보, 경상일보), 외신 3곳(CNN, NHK, NBC), 경제지 2곳(머니투데이, 매일경제), 종합일간지 1곳(한겨레신문), 뉴스통신 1곳(연합뉴스), 인터넷 매체 1곳(오마이뉴스) 등 15개사가 골고루 질문했지만 기자들의 빗발치는 질문에 1시간은 턱없이 모자랐다.


질문에 앞서 “대통령님 떨리지 않으십니까”라고 발언해 웃음을 안겼던 김성휘 머니투데이 기자는 “운 좋게 질문할 수 있었지만 다른 기자들의 기회를 뺏었다는 미안함이 들 정도였다”며 “다음에는 질문을 더 많이 소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뉴스통신사 B 기자는 “회견 이후 청와대 참모진과 만난 자리에서 생중계가 아니라 녹화 방송을 한다면 시간을 여유롭게 쓸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오갔다”고 설명했다.


다음 회견에 기대감을 나타내며 새로운 형식을 제안하는 기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특히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종합일간지 C 기자는 “대북 레드라인이 어디냐는 질문은 나왔지만 만약 북한이 그 선을 넘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를 묻지 못해 아쉬웠다”며 “누구나 궁금해 할 만한 질문에 대통령이 먼저 답하고 거기에 꼬리를 무는 토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충재 기자도 “많은 기자가 질문하는 것도 좋지만 제비뽑기로 기자를 선정해 대통령과 깊이 있는 토론을 하는 것은 어떤가”라며 “지금껏 그런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욕심내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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