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MBC에 100여명의 기자들이 새로 들어왔다. 파업에 참여하거나 저항한 기자들을 ‘유휴 인력’으로 분류해 비제작부서로 추방하고, 그 빈자리를 채운 경력들이다. 경영진은 권력에 야합해 뉴스를 사유화했지만, 이들은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 저널리즘이 ‘거세’된 MBC 뉴스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현재 MBC는 400여명의 기자와 PD, 아나운서가 펜과 마이크를 내려놓고 제작을 거부하고 있다. 내달 4일부터는 총파업도 앞두고 있다. 지난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170일간의 파업 이후 해고와 징계, 전보 등 수많은 아픔을 겪은 MBC가 또다시 투쟁을 시작한 것이다.
5년 전 이명박 정권이 내려 보낸 김재철 전 사장에 이어 안광한 전 사장, 지금의 김장겸 사장까지 MBC는 정부의 입김에 흔들리며 신뢰도가 끝없이 추락했다. 특히 경영진은 부당한 지시에 반발하는 200명이 넘는 직원들을 업무에서 배제시켰다. 그 자리는 새로 뽑은 경력들이 메웠다. 무려 100여명이 들어왔다. 경력을 두고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이들 중에는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들과 공정방송을 위해 뜻을 함께한 이도 있다. 또 부당한 지시에 저항해 업무에서 배제된 이도 있다. 현재 MBC본부에 가입한 경력기자들은 총 33명. 3명 중에 1명이 3노조(2012년 이후 입사자들로 구성된 경력 노조)가 아닌 1노조(기존 공채 인력을 포괄한 MBC본부 노조)를 선택한 셈이다. 기자협회보는 그간 부당한 보도지시로 말 못할 고충을 겪은 두 경력기자를 만나 MBC의 속사정을 들었다.
A기자는 “‘너네가 힘들면 얼마나 힘들겠나’는 이야기로 번질까 우려스럽다”며 “실제로 해고나 징계, 전보와 같이 기존의 구성원들이 받은 고통이 더 크다. 괜히 인터뷰를 해서 도마에 오를까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B기자는 “내가 제대로 된 뉴스만 만들면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러나 부당한 지시는 쉼 없이 계속됐고, 그에 저항하지 못한 나에겐 무력감만 남았다”고 했다.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A기자=“관계적인 면에서 매우 힘들다. 야근할 때조차 공채출신 후배와 서로 눈치를 보느라 쉬지도 못한 적도 있다. 가벼운 “커피 마시겠냐”는 질문조차 사실상 어려울 정도로 불편한 관계가 이어졌다. 지금은 옅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남아있긴 하다.”
B기자=“당연히 좋지 않은 분위기일 거라고는 예감했지만, 파업 때 들어온 시용기자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들어오고 나니 반목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회의할 때 대화하는 것조차 불편했다. 내가 무슨 아이템을 내면 반대 의견이 쏟아질 것 같았다. 생활하는 과정에서도 시선이 따가웠는데,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당한 취재 지시가 있었나?
A기자=“부장이 아침마다 박원순 시장을 비판하는 아이템을 자꾸 요구했다. 팩트 확인을 해봐도 대부분 다 거짓이었다. 그래서 부장에게 “말씀하신 야마로 제작 안 될 것 같다”고 말씀드리면 “그 내용 그대로 영상만 입히면 된다”는 식으로 종용했다. 여러 차례 말을 듣지 않자, 어느 순간 같이 입사한 경력기자들을 같은 부서에 배치시켰다. 그러더니 나한테는 어떠한 업무도 주지 않고, 그 경력동기들에게 비슷한 리포트를 지시했다. 실제로 팩트 확인이 전혀 안 된 이상한 리포트들이 나갔다. 결국 업무평가에서 최하등급인 R등급을 두 번 받고 부서를 옮기게 됐다.”
B기자=“악의적인 기사 오더가 자꾸 내려오니까, 그런 기사를 쳐내는 게 하루 일과였다. 경영진은 멀쩡한 사람들을 몰아냈다. 그 자리에서 대신 일하게 된 만큼, 비난받지 않으려면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다. 그런데 아무리 쳐내도 결국 다른 경력기자들의 입으로 보도가 나가게 되니까 절망감이 몰려들었다. ‘내가 하루 종일 한 일이 무용지물이 됐구나’하는 무력감과 자괴감이었다.
특히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당시 법정 분위기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죽었다’는 외침에는 느낌표를 쓰고, 반대편 쪽은 마침표로 표현했는데 이조차 문제가 됐다. 실제로 통진당 해산 심판을 반발하는 목소리가 더 컸기 때문에 구분을 한 것뿐이었는데, 그걸 본 데스크가 통진당 편파 기사를 썼다고 지적하며 “너의 정체를 알았다”고 비난한 것이다. 당시 데스크는 “배가 앞으로 가야해서 모두 노를 앞으로 젓고 있는데 너는 홀로 뒤로 젓고 있다. 더 이상 너와 함께 갈 수 없다. 배에서 내리라”고 하며 퇴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또 “너는 1노조원도 아니고 3노조원도 아니지 않나. 정체를 분명히 드러내라”고도 했다.”
-정상화가 된다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
A기자=“그동안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MBC에서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만큼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을 버텨내야했기 때문이다. 곧 정상화가 될 것으로 믿고,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MBC가 될 수 있도록 고민을 해보겠다.”
B기자=“공영방송에서 일하는 종사자로서 직업윤리가 없거나 포기한 사람들이 MBC에 너무나도 많은 것 같다. 지난 8~9개월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지만, 경영진이 그대로니까 구성원도 그대로고 보도도 그대로다. 젊은 기자들이 아무런 비판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소름끼칠 정도다. 직업윤리를 상실한 사람들이 없는 조직이 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어디 부서에 가든 즐겁고 열심히 일할 수 있다.”
-MBC가 앞으로 어떻게 됐으면 하나?
A기자=“기본적인 사실 확인은 언론의 기본이다. 그런데 MBC는 공영성을 따지기 전에 기본조차 안 돼 있는 상태다. 김장겸 사장이 물러난다고 해서 바로 좋아지지는 않겠지만, 그의 사퇴가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공영방송으로서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상식적인 조직이 됐으면 한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면 송강호가 “아빠가 손님을 두고 내렸어”라고 말하지 않나. MBC는 그동안 손님을 너무 많이 두고 내린 것 같다. 파업이라는 전환점을 통해 버리고 간 손님들을 다시 태우자.”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