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 김사복, 많이 보고 싶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 말미에 등장한 생전의 위르겐 힌츠페터는 김사복씨를 향해 이 말을 전했다. 그러나 힌츠페터가 그토록 찾고 싶어 했던 김사복씨는 영화 제작사뿐 아니라 많은 언론의 노력에도 그동안 행방이 묘연했다. ‘택시운전사’를 본 김정훈 CBS 기자 역시 김사복씨를 찾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 정도로 영화가 흥행했고 이름도 독특한데 못 찾는 거면 영화에서처럼 가명이거나 우여곡절 끝에 사라졌다”는 생각에서였다.
김 기자는 그래도 김사복씨를 찾기 시작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찾아본 것 같지? 정작 찾아보려 노력했던 사람은 별로 없을 걸”이라는 손금필 CP의 말이 귀에 박혔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택시운송사업조합, 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국토교통부, 도로교통공단 등에 연락해 일일이 확인 작업을 했다. ‘확인해보니 없다’는 통보를 다 받았을 때쯤 트위터에 김사복씨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김승필씨를 발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승필씨가 아들일 거라고 믿지 않았어요. 무슨 의도일까 궁금한 마음에 연락처를 남겼죠. 증거가 제일 궁금했고 때문에 만나기 전 빽빽하게 물어보겠다고 양해를 구했어요.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아버님에 대한 설명뿐 주민등록증이나 이름이 남아 있는 어떠한 것도 없더라고요.”
심지어 김승필씨는 김 기자를 만나기 이전 몇몇 언론 매체와 접촉을 한 상태였다. ‘보도가 안 나간 데는 이유가 있구나’ 생각이 들 때쯤 그는 불현듯 가족관계증명서를 떠올렸다. 며칠 전 증명서를 떼러 가던 길에 본 무인발급기가 생각난 것이다. “밤 인터뷰였는데 결례인 걸 알면서도 혹시 확인할 수 있느냐고 물었죠. 다행히 김승필씨가 흔쾌히 수락했고 정말로 김사복씨라는 이름이 나왔어요. 그때부터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인터뷰 후 김승필씨와 영상통화를 하며 김사복씨가 외국인 기자들과 같이 찍은 사진들을 확인한 김 기자는 밤을 새워 기사를 썼다. 그가 취재한 내용은 다음날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세상에 처음 공개됐고 그 뒤를 이어 강민주 PD가 취재에 들어갔다. 호텔택시였다는 김승필씨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당시 조선호텔에서 일했던 이들에게 확인 작업을 거친 것이다. 그 기사 역시 다음 날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보도됐다.
“두 번째 기사까지 나갔지만 여론은 김승필씨가 김사복씨의 아들임을 믿지 못하는 분위기였어요. 오기가 발동해서 논란의 여지없이 입증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김 기자는 결정적 물증인 김사복씨와 힌츠페터가 함께 찍은 사진을 두고 고심했다. 사진 속 인물이 힌츠페터라는 객관적 증언이 필요했다. 그는 1980년 힌츠페터와 함께 독일 TV방송인 ARD-NDR에 소속돼 일본 특파원을 지낸 페터 크레입스와 접촉해 사진 속 인물이 힌츠페터가 맞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보도가 나가자 의심이 찬사로 바뀌었어요. ‘정말 김사복씨 맞다’ ‘영화에서 봤던 김사복씨의 행적보다 실제가 더 감동적’이라는 댓글이 달렸죠.” 김 기자 역시 안도했다. “사실 김사복씨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할 때 ‘행적이 영화와 다르면 어떡하지’ ‘오히려 여론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송강호씨가 연기했던 인물보다 실제 김사복씨가 더 감동적인 삶을 살아오셨더라고요. 외신기자를 만나며 브리핑을 할 정도로 군부독재 상황을 소상히 알았고 죽을 수 있음에도 또 광주를 갔던 인물. 그런 행적을 보며 강 PD와 함께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김사복씨가 어떻게 인정을 받고 처우가 달라지는지 후속 보도를 할 계획이다. “저 역시 김사복씨의 행적을 보며 감동을 받았거든요. 큰 숙제를 떠안은 김승필씨를 도와 계속 보도할 생각입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