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스트 모욕 말라는 BBC 회장의 경고

[글로벌 리포트 | 영국]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데이비드 클레멘티 BBC 회장이 저널리스트들에 대한 ‘명백한 공격’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영국 정치권과 소셜 미디어를 향해 강력한 대응을 요청했다.


지난 13일 케임브리지 왕립 텔레비전협회(Royal Television Society)의 초청연설에서 클레멘티 회장은 최근 들어 BBC 저널리스트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일상적으로 모욕을 당하고 있다며 특히 여성 저널리스트들이 그 공격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피해 사례가 이번 연설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현지 언론은 총선 취재를 하다 온라인에서 성차별적 공격을 받은 로라 쿠엔스버그 사건이 BBC 내부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계기가 되었으리라 추측한다.


쿠엔스버그는 노동당과 영국독립당의 기자회견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낸 후 보수당 지지자들로부터 전방위적 사이버 테러를 당했다. 결국 BBC는 그녀를 위해 총선 기간 동안 회사 차원에서 경호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 사건을 두고 현지 일간지 중 하나인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쿠엔스버그는 오늘날 영국 TV에서 가장 논쟁적 여성”이라며 성차별적 논평을 내놓아 빈축을 샀다.


또 다른 피해 사례도 있다. BBC 라디오5채널의 유명 진행자인 엠마 바넷은 보육 비용에 관한 질문으로 제레미 콜빈 노동당 당수를 난처하게 하고 소셜미디어에서 인종차별적 메시지들을 받았다. 결국 정치 회견장에서 이뤄지는 공식적 보도가 공격의 주된 원인인 셈이다.


이에 클레멘티 회장은 “당파를 뛰어넘어 이러한 공격이 이어진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간단하게 말해, BBC 저널리스트들은 그들이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공격을 받은 것”이라고 일축했다. 보도 원칙을 어겨서 벌어지는 현상이 아닌 이상 제도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그는 정치인들이 더는 “서서 지켜만 보지 말고 그러한 공격에 대응해야 한다”며 나아가 지지자들에게 그러한 공격이 “견딜 수 없는 것임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대부분의 공격이 온라인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 회사에 적극적인 대처를 요구했다.


현재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BBC와 함께 ‘가해자 단속’을 위해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클레멘티 회장은 “나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이 더 많은 일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며 산업 차원에서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영국에서 저널리스트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공격 및 모욕은 문제의 심각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뚜렷한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BBC가 아닌 다른 언론사들 역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며 자구책을 고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가디언은 2006년부터 신문사 웹사이트에 축적되어 온 7000만개의 댓글을 분석해 저널리스트들에게 가해지는 공격들의 특성을 밝혀냈다. 전문 연구기관에 의뢰해 가장 많이 댓글 공격을 받은 10명의 저널리스트들의 인류통계학적 특성을 분석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10명 중 8명이 여성이었으며 나머지 2명에 해당하는 남성의 경우, 모두 흑인이었다. 결국 저널리스트를 향한 공격의 이면에 젠더, 인종, 계급의 여러 사회학적 요인이 얽혀 기자 개개인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연구를 진행한 가디언은 회사 측에서 제시하는 ‘가디언 (독자) 커뮤니티’의 규범을 어기는 댓글을 자동적으로 차단하는 ‘가디언 모더레이터’ 기능을 마련하여 신문사 홈페이지에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처리가 된 댓글은 2%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 개발만으로 댓글을 완벽하게 규제하는 것은 현 단계에서는 힘들어 보인다.


저널리스트들을 대상으로 한 공격과 학대를 막기 위해서는 이번 BBC 회장의 공개적인 발언이 시사하듯, 언론사의 개별적인 대응보다는 정치권과 미디어산업 전체가 협력 하에 강력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작업이 최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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