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핀란드 신문의 생존법

[글로벌 리포트 | 핀란드]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전 YTN 기자

지난주 핀란드 종합일간지 두 곳과 방송국, 몇몇 공기관을 방문했다. 헬싱키를 기반으로 발행하는 일간지 헬싱긴 사노맛(Helsingin Sanomat)과 내륙 중심도시 땀뻬레(Tampere)의 아아무레흐띠(Aamulehti), 그리고 공영방송 윌레(Yle)에서 그들의 ‘공장’ 현황을 들을 수 있었다. 핀란드 미디어 환경은 한국 언론계의 상황보다는 덜 경쟁적이지만, 참고할 만한 관점을 발견했다. 핀란드 언론사들은 디지털 시대에 독자는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지 깊이 고민하는 듯 보였다.


아아무레흐띠(Aamulehti)는 독자 유형을 여섯 가지로 분류했다. 나이, 성별, 거주지, 소득, 취미, 직업, 여가, 소비패턴, 여기에 생활습관과 관심사, 미디어 접속 시간대까지 포함해 가상의 독자를 만드는 식이다. ‘23살 의상 디자이너 엠마는 땀뻬레 시내 원룸에서 산다. 출근할 때는 20분가량 자전거를 이용한다. 채식을 하고, 달리기를 즐겨한다. 월급은 월 200만원가량, 백화점보다는 중고품 가게에서 특색 있는 소품을 산다. 북극의 기후변화 실태를 조사하는 시민단체에 매달 10유로를 후원한다. 사무실에서는 책과 신문 모두 컴퓨터 모니터로 읽고, 집에 돌아온 뒤에는 잠들기 전까지 휴대폰을 본다. 하루 두세 번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린다.’ 이와 같은 식으로 A4용지 두 장 가량의 세세한 정보로 독자를 묘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사를 기획하고 작성한다. 미디어 소비 패턴에 맞춰, 어떤 시간대에 어떤 경로로 기사를 내보낼지도 계획한다. 편집장은 이 신문의 온·오프라인 기사가 도시 인구 22만명 가운데 94%에게 도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고 자부했다.


이 신문은 그러면서도 독자가 신문을 읽는 이유를 놓치지 않았다. 핵심은 ‘돈과 정보’였다. 낌모 코스끼(Kimmo Koski) 아아무레흐띠 편집장은 수도가 아닌 내륙 도시에 기반을 둔 언론사인 만큼, 지역 독자가 알아야 할 정보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신문을 읽은 독자가 돈을 아낄 수 있고,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으며, 새로운 사람에 대해 알 수 있어야 한다는 목표로 신문을 만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앞서 말한 여섯 가지 유형을 기자가 수시로 확인하며 대상 독자를 좁혀간다고 강조했다. 편집장은 특히 구독자 카드 및 마케팅 업체 분석 자료를 토대로 독자를 파악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 도시의 거의 모든 독자에 대해 알고 있다”는 말도 했다.


독자를 찾으려면 ‘디지털 퍼스트’ 전략은 필수였다. 이번에 방문한 양대 일간지뿐만 아니라 3만~4만부를 발행하는 지역신문사도 온라인으로 먼저 기사를 내보낸 뒤 지면을 발행했다. 헬싱긴 사노맛은 지면에 익숙한 독자가 ‘디지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페이월(paywall·기사 제목은 공개하되 유료 결제해야 전체 기사를 읽을 수 있도록 만든 구독 방식)을 시행하면서, 한 독자가 일주일에 기사 5편을 무료로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독자가 많이 찾는 인터뷰, 감정을 자극하는 취재물 가운데 매주 한두 편을 골라 ‘유료 결제’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구독자를 늘려나간다. 기사 한 편마다의 시각적인 디자인, 또 인터랙티브 기획물 또한 중요하게 여겼다.


아아무레흐띠 편집국은 온라인판 전체를 볼 수 있는 대형 모니터를 뉴스룸에 설치하고, 실시간 조회수와 도달률이 표시되는 모니터를 바로 옆에 설치해 뒀다. 전문 분석업체와 계약해 언론사 홈페이지에 들어오는 트래픽 유입 경로를 수시로 확인했다. 편집국장은 온라인과 지면의 상황을 모두 파악해 기사를 기획했다. 안락한 의자나 커다란 회의실은 보이지 않았고, 의사결정은 모니터를 보면서 바로 이뤄졌다. 같은 미디어 그룹(알마 미디어)에 속한 지역 언론사 기사를 골라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전국판에 넣을 수도 있었다. 온오프라인 양쪽을 함께 편집할 수 있도록 만든 콘텐츠 관리시스템(CMS)의 힘이었다.


이런 핀란드 언론사의 디지털 전략은 ‘포털 사이트’와 같은 경쟁자가 없는 환경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은 뼈아픈 대목이다. 이를테면 2017년 8월 기준 헬싱긴 사노맛을 포함해 핀란드 언론사 6곳이 방문자 많은 웹사이트 가운데 30위권 안에 들었다. 핀란드의 독자는 뉴스를 읽거나 보기 위해 언론사 홈페이지에 직접 들어간다는 뜻이다. 참고로 같은 날짜 기준 국내 웹사이트 순위를 보면, 1위에 네이버, 3위에 다음, 7위에 네이버 뉴스가 있다. 24위에 ‘일베’ 사이트, 몇 계단 앞에 동아닷컴(22위)이 올랐다. 언론사 홈페이지로는 유일했다.


언론진흥재단에서 주관한 이번 핀란드 언론사 방문에는 경남도민일보, 광양신문, 설악신문, 고양신문, 당진시대 등 다섯 개 지역신문사 편집장과 대표가 함께 했다. 독자 감소와 경영난을 동시에 겪는 신문사 입장에서 볼 때, 이곳의 언론 환경은 국내와 다른 점이 많다. 다만 우리의 독자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고, 또 무엇을 기대하는지 고민하는 지점부터 언론사가 공통적으로 겪는 위기를 풀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독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언론사도 살아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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