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C 닮아가는 트럼프와 미디어의 혈투

[글로벌 리포트 | 미국] 국기연 세계일보 워싱턴 특파원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달 8일이면 대통령 당선 1주년을 맞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끝없이 상대를 바꿔가며 좌충우돌했다. 그렇지만 일관되게 ‘다이하드’로 남아 있는 상대 중의 하나가 미국의 미디어이다. 트럼프와 미디어 간 싸움은 스포츠 경기로 치면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에 가깝다. 옥타곤 바닥에 선혈이 낭자하지만, 양측 간 주먹질과 발길질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워싱턴 포스트(WP)는 미국의 어느 매체 못지않게 ‘트럼프 짓밟기’에 올인하고 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북한과 2∼3개의 직접적인 대화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고 공개했다가 트럼프로부터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면박을 당한 일을 전한 WP의 기사를 보면 UFC의 혈투 장면이 떠오른다. 대나 밀방크(Dana Milbank) 기자는 3일 자 ‘워싱턴 스케치’ 코너에 쓴 기사에서 트럼프를 개 주인, 틸러슨 장관을 ‘렉스’라는 이름의 개, 국무부를 ‘개집’에 비유했다. 이 기사의 제목은 ‘트럼프가 잘 구르는 개들을 좋아한다. 말을 한다고? 나쁜 렉스!’라고 돼 있다.

 

렉스는 ‘말’로 먹고 사는 외교 사령탑이지만 그가 무슨 말이든지 하면 트럼프가 트위터로 ‘입 다물어’라고 꾸짖는다고 밀방크 기자가 비아냥거렸다. 밀방크 기자는 “렉스가 화가 나서 으르렁거리고, 짖어대기도 했으며 트럼프를 물려고까지 했으나 주인을 물 수는 없어 이제 다시 그 앞에서 구르기나 하고, 죽은 척한다”고 두 사람의 관계를 묘사했다.

 

미국의 퓨 리서치센터는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미국의 주요 신문과 방송사 24개를 골라 트럼프 대통령 취임 초반의 보도 내용 3000건을 비교·분석했다. 이 조사에서 미국 미디어가 최근 3명의 전임 대통령과 비교할 때 트럼프를 가장 비판적이고, 부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미국 정부 출범 60일 동안의 보도 내용을 비교한 결과 트럼프 정부에 대한 긍정적인 보도 비율은 5%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에 언론의 긍정적인 보도 비율은 버락 오바마 42%, 빌 클린턴 27%, 조지 W. 부시 22% 등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에 미국 주요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 비율은 트럼프가 62%로 압도적으로 높았고, 클린턴 28%, 부시 28%, 오바마 20% 등으로 나타났다.

미국 미디어는 특히 트럼프에 대해서는 정책이나 이념보다는 지도력과 성품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고 있는 사실도 확인됐다. 주요 언론의 지도력과 성품에 관한 보도 비율은 트럼프 69%, 오바마 50%, 클린턴 42%, 부시 35% 등으로 집계됐다. 이념과 정책이 차지한 비율은 트럼프가 31%로 가장 낮았고, 부시 65%, 클린턴 58%, 오바마 50% 등으로 드러났다.

 

퓨 리서치는 진보, 중도, 보수 언론 등 세 그룹으로 나눠 트럼프와 현 정부에 관해 어떻게 보도하는지 비교했다. 트럼프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진보 언론의 기사 중 약 70%가 비판의 근거로 미정부 관리, 상·하 의원 등 의회 관계자, 전문가 등 ‘소스’(source)를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도 언론은 소스 인용 비율이 62%이고, 트럼프에 우호적인 보수 언론은 소스 인용 비율이 44%에 그쳤다. 진보 언론이 ‘팩트 체크’ 형식으로 트럼프 발언 등의 부정확한 측면을 집중적으로 부각하고 있는 것도 특징 중의 하나이다. 트럼프 발언 등에 대한 팩트 체크 비율은 진보 언론 15%, 중도 10%, 보수 언론 2% 등으로 집계됐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 언론의 ‘이슈 몰이’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보도 토픽을 분야별로 보면 트럼프의 정치력 17%, 이민 14%, 각료 임명 논란 13%, 미국과 러시아 관계 13%, 건강 보험 9% 등으로 5대 이슈가 전체 보도의 66%를 차지했다. 이 문제 이외의 다른 현안을 다룬 비율은 34%에 머물렀다.

 

트럼프라는 이단아의 등장으로 미국과 세계가 격변기를 보내고 있고, 미국 언론도 그런 트럼프를 뒤쫓으면서 변화의 바람에 휩쓸려가고 있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도 언론의 생명인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지 않아야 하는 게 트럼프 시대의 언론이 안고 있는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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