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사진 비리는 국민 기만 행위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KBS 파업이 38일차에 접어들었다.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에도 직원들은 공정방송에 대한 열망으로 파업을 하루하루 이어가고 있다. 최근 드러난 KBS 이사진의 비리는 이런 상황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집회 중인 KBS 직원들 옆에서 손으로 ‘V자’를 그려 기념사진을 찍고, 집회 구호에 맞춰 리듬을 타는 등의 조롱 행위로 물의를 빚었던 강규형 KBS 이사가 이번엔 업무추진비를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 이사가 지난 2년 동안 법인카드로 지출한 2500만원 가운데 537만원에 해당하는 액수다.


KBS는 사규에 따라 이사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경비를 제공하기 위해 법인카드를 지급하고 있다. 물론 용처는 KBS의 업무 수행에 한해 엄격하게 제한돼있다. 그런데 강 이사의 법인카드는 애견카페와 면세점, 공연장 등 상식적으로 업무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곳에서 사용됐다.


언론노조 KBS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강 이사는 34차례에 걸쳐 자택 인근 애견 카페에서 법인카드를 사용했고, 심지어 애견인 회식에서 다른 사람에게 법인카드를 주고 대리결제를 하도록 한 정황도 포착됐다. 자신의 집근처 백화점·영화관 등에서도 법인카드를 사용했는데 주말과 공휴일을 가리지 않았고, 개인일정으로 해외에 가면서 면세점에서 수십만원을 법인카드로 지출하는 것은 물론, 해외 출장 중에는 일정에도 없던 공연을 관람하는 데 수십만원을 결제했다.


KBS 이사는 국민의 방송인 공영방송을 운영하는 책임이 막중한 자리다. 좁게는 공영방송의 이미지와 넓게는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공인으로서의 책무와 함께 높은 윤리규범까지도 요구된다. 그런데도 강 이사는 자신이 법인카드를 사용한 곳은 모두 업무 연관성이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해명을 내놓고 있다.


강 이사가 쌈짓돈처럼 사용한 업무추진비는 어디서 온 것인가. KBS 재원구조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수신료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징수한 준조세격의 수신료를 개인의 주머닛돈처럼 쓰면서도 반성은커녕 잘못이라는 인식조차 없는 도덕 수준을 가진 사람이 공영방송 이사라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더군다나 수년째 경영난에 직면해 있는 KBS가 비상경영으로 직원들의 업무추진비도 삭감하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상황에서 강 이사의 업무추진비 유용은 공영방송 직원과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다.


문제는 이같은 비리가 다른 KBS 이사들에게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미 이인호 KBS 이사장은 지난 2015년 개인 용무로 해외에 가면서 업무추진비를 사용해 문제가 됐고, 최근엔 개인 용무에 상습적으로 관용차를 이용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이처럼 수차례 지적돼온 공적 재산 유용이 지금까지 눈감아졌던 건 KBS 사측의 방만한 운영 탓도 크다. 사측의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조직적인 위법행위인 셈이다. 또, 감사원과 방송통신위원회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KBS 이사진에 대한 감사 요구를 방통위와 감사원이 이번에도 눈감는다면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이다.


‘피고인은 공영방송의 수장으로서 자신의 처신이 곧 회사의 이미지를 좌우하고 공영방송으로서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직위에 있으므로 혹시라도 의심을 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하지는 않는지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는 자세는 공인으로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MBC를 망가뜨린 주범으로 지목되는 김재철 전 MBC 사장이 업무추진비를 유용했을 당시 법원이 내린 유죄 판결문의 일부다. 공영방송 이사들이 이 교훈을 다시금 새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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