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임명동의제, 낡은 SBS와 결별의 시작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SBS 노조와 대주주가 지난 13일 ‘사장 임명동의제’에 합의했다. 대표이사 사장을 임명할 때 SBS 재적 인원의 60% 이상이 반대하면 임명을 철회하는 제도다. 또 편성, 시사교양 최고 책임자는 각 부문인원의 60%가 반대할 경우, 보도부문 최고책임자는 50%가 반대하면 임명할 수 없다. 노사는 이번 합의를 사회적으로 보증받자는 차원에서 연말 예정된 방송통신위원회 재허가 심사위원회에 합의문을 제출하기로 했다.


전례없는 사장 임명동의제는 공정보도 등 저널리즘 본령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그간 윤세영 전 SBS 회장 일가는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SBS를 사유화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웠다. 윤 전 회장은 박근혜 정부 동안 자사 보도본부 간부들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도우라”는 지침을 지속적으로 내리고, 그의 아들 윤석민 전 부회장은 모회사인 태영건설 경영권을 승계한 이후 인제 스피디움 등 태영의 각종 이권 사업에 SBS를 동원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오죽했으면 SBS 노조가 두 사람에 대해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고발하는 걸 검토했을까.


대주주 일가가 언론의 공적책임을 망각하는 사이 SBS의 영향력과 신뢰도는 끝 모르게 추락했다. 구성원들은 JTBC가 국민의 시선을 확보하며 질주하는 모습을 보며 “SBS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냐”며 자괴감을 느껴야 했다. 그렇다고 돈을 번 것도 아니었다. SBS는 작년에 지상파 3사 중 유일하게 89억원의 적자를 냈다. 대주주 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SBS콘텐츠허브와 SBS플러스에 수익을 몰아주는 과정에서 SBS에 적자가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노조와 대주주가 이번에 왜곡된 수익구조를 정상화하는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는 데 합의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지난달 11일 사주 일가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사장 임명동의제에 합의한 것은 SBS 정상화를 위한 구성원의 열망과 의지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BS 노조는 지난 8월 이명박-박근혜 정권 기간 무너진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다시 세우기 위해 ‘방송사유화 실태조사 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며 내부 혁신에 나섰다. 사주 일가가 쌓아온 적폐에 눈 감고 방송 사유화를 방치했다는 반성이자 이대로 가다간 SBS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었다. 윤창현 노조위원장 등 노조 집행부는 ‘사주까지 건드리냐’는 일각의 수군거림을 맞닥뜨리기도 했다.


SBS는 사장과 편성, 시사교양, 보도부문 최고책임자 임명동의제를 올해 12월1일 정기인사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사주 일가는 이 제도가 왜곡되지 않도록 사장 등 최고책임자 임명에 있어 구성원의 신망을 두루 받으면서 SBS 혁신을 강력하게 견인할 수 있는 인사를 발탁해야 한다. 그것이 프로그램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시청자의 신뢰를 다시 얻는 길이다. 이미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선언한 마당에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다만 제도가 SBS 정상화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걸 구성원들은 명심해야 한다. 사장 임명동의제 도입을 계기로 낡은 조직문화를 혁파하는데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구체제 혁파에 나선 SBS를 보며 파업 7주차에 접어든 KBS·MBC 상황을 떠올리려니 참담하다. 민영방송의 사주도 내부 구성원의 요구에 화답하는 상황에서 고대영, 김장겸과 공영방송 이사진은 장기 파업 사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국정농단에 대한 반성과 참회는커녕 정치보복 운운하며 사실상 재판을 거부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어찌 그리 닮았는가. 언론인이길 포기한 그들의 몰염치에 기가 막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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