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과 언론

[언론 다시보기] 문소영 서울신문 금융부장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 이전, 1980년대 대학생들의 군부독재타도 시위현장은 신문이나 방송뉴스에 소개되지 않기 십상이었다. 어쩌다 보도가 되면 ‘체제전복 좌경세력’이었다. 언론사에 상주하는 안기부 직원과 청와대 정무수석실의 지휘 하에 문화공보부가 언론사에 ‘보도지침’을 내리던 시절 이야기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신문사와 방송사의 사회·정치부장들에게 시위, 체제개혁이나 정권의 정당성 위기 이슈 등의 보도를 자제하라고 지침을 내렸고, 보도지침 이행률이 72~93%였다(김해식, 1992). 그런 탓인지 5공화국에서 1980년 광주시민들은 물론, 1980년대를 관통한 민주화운동 세력은 불온한 세력으로 낙인찍혔다. 그나마 다행은 올 가을에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 덕분에 37년 만에 ‘광주사태’라는 왜곡의 봉인이 대중적으로 풀리고 있다는 것이다.


‘운동권=불온세력’이라는 사회적 낙인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같은 개혁적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잘 희석되지 않았다. 201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정부가 북방한계선(NLL)을 북한에 넘겼다’는 정치권의 왜곡된 선동에 국민들이 쉽게 유혹된 이유이기도 하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전대협이 이끌고 있다’고 주장하는 보도를 보고 ‘정말 그런가’ 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리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이 때 거론되는 전대협은 군부독재에 맞서 용감하게 목숨을 내놓고 저항한 양심적인 젊은이들이 아니다. ‘아스팔트 청춘’이 어찌어찌 정권을 획득해 어설픈 정책을 펴는 위험한 세력으로 폄하된다.


일부 언론은 ‘386의 독식’도 제기한다. 기득권이 된 386이 국회와 청와대를 탐욕스럽게 차지하고 앉아 후배들에게 성장할 기회를 내주지 않는다는 지적들이다. 정말 그러한가? 박근혜 정부에서 이른바 ‘신386’이라 부른 1930년대에 출생해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40여년 승승장구한 김기춘 전 법무장관 같은 인물들을 재활용할 때도 산업화 세대의 지혜를 사회적으로 전수받는다면서 우호적이더만. 이제 40대말 50대 초중반에 이른 ‘386’에게는 일부 언론들은 왜 그리 가혹한 평가를 하는가.


이 의아함을 최근 일부 풀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던 1997년 전 거의 20년 동안 386운동권은 한국 사회 악의 축이었다는 분석이다. 안기부와 문화공보부가 신문과 방송을 통해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고 경제발전에 지장을 주던 골치 아픈 세력’ ‘때때로 북한과 연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자아내는 일군의 집단’이라고 집요하게 보도하게 한 탓이란다.


이러니 문득 선배 언론인들의 보도에 아쉬움이 남는다. 박정희 정권의 차관도입 비리를 다루다 탄압받은 1968년 ‘신동아 필화사건’이나 1974년 유신정권을 비판하다 발생한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태’,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이한열 직격탄 피격사진 게재’ 등은 한국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28일 촛불시위 현장을 보도하듯이 1980년대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시위를 언론이 객관적으로 보도했더라면, 386운동권은 오늘날 억울한 누명을 덜 쓰지 않았을까, 한국의 민주화도 한층 성숙하지 않았을까, 하는 답도 없는 가정을 해본다.


‘국민타자’ 이승엽 선수는 “내가 스스로 잘한다고 느끼거나 생각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남들이 잘한다고 평가해줘야 잘하는 거다”라고 발언했단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는 민주주의의 파수꾼이다. 정치권력과 광고주 같은 자본권력은 물론, 언론사주, 경영진의 인사권력 등에서 벗어나 편집권을 독립해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시민들로부터 받아야 한다. 좋은 언론을 만드는데 시민의 능동적 역할도 크다. 공영방송을 살리겠다고 파업에 나선 언론인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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