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케 유리코 지사의 파리출장

[글로벌 리포트 | 일본]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

선거 당일 희망의당을 대표해서 투표함 앞에서 누가 포즈를 취할 것인가. 선거 결과에 대해서 카메라 앞에서 언론사의 취재에 누가 응할 것인가. 아니 희망의당에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 도지사가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22일 각 방송사들이 사활을 걸고 진행하는 개표방송에 ‘새로운 보수’를 자칭하며 자민당을 대신해서 집권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고이케 도쿄 도지사의 모습은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고이케 지사는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21일 저녁에 하네다를 출발해서 파리로 떠났기 때문이다. 세계 60여개 도시가 참여한 가운데 열리는 온난화 대책 C40 운영위원회에 참석하는 것이 외유의 목적이다. 일정은 일주일 정도 잡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당일 당대표가 자리를 비운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투표 당일 투표함 앞에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당대표의 역할이다.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후 선거결과에 대한 의견을 묻는 각 언론사들의 취재에 응해야 하는 것도 당 대표의 역할이다. 6개의 전국 채널을 포함해서 신문사의 취재에 응해야 하고 방송에도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당 대표의 일정은 만만치 않다. 한 표로 희비가 엇갈릴 수 있는 소선거구에서 당의 얼굴인 대표가 없다는 것은 큰 손실이다.


고이케 지사의 파리 출장은 지난달 29일에 이미 발표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3일에 다시 한번 고지를 한 것이다. 그것도 출입 언론사를 대상으로 한 구두 발표에 그쳤다고 한다. 왜 도쿄도는 이미 발표한 일정을 다시 확인해야 했을까. 아마도 외유에 동행할 취재기자를 모으기 위한 포석이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산케이 신문은 고이케 지사가 해외 출장을 다녀올 수 있도록 아베 수상이 22일로 투개표 선거일정을 잡았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일정이 확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 출장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이케 지사는 가타부타 확답을 피하는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이런 태도가 ‘고이케 출마설’로 이어졌고, 측근들도 출마설을 키우는 역할을 했다. 이들은 도쿄도의 일정 발표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며 출마선언을 기다리는 언론들의 관심을 집중시켜 선거기간 직전에 출마를 선언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그렸다. 선거기간 직전의 출마선언은 희망의당에 대한 컨벤션 효과를 극대화하고 당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또 선거가 시작되면 언론들은 희망의당이 의석을 얼마나 얻을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인다. 고이케 지사가 도정을 내던졌는지 아닌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고이케 유리코 지사만이 할 수 있는 고도의 언론 플레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고이케 지사의 총선 출마는 성사되지 않았고. 희망의당에 대한 컨벤션 효과도 나타나지 않았다. 신문사들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불출마 선언 직후부터 희망의당에 대한 국민의 열기는 급격하게 식기 시작했다. 이와 반대로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온 에다노 전 관방장관이 설립한 입헌민주당이 반 자민당 대체 세력으로 급격하게 부상하기 시작했다.


선거 마지막 날에 당 대표가 도정을 핑계로 자리를 비우는 것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언론은 찾아 볼 수 없다. 파리출장이 정해진 지난달 29일 이후 후속보도나 논평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렇지만 고이케 지사 마크맨이나 도청 출입 기자들은 이 같은 사실들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선거중반 판세를 전하는 언론 보도를 보면 도쿄도내의 선거구에 희망의당 후보자가 당선되기 힘들다는 관측을 내놓았다. 고이케 지사의 선거구인 도쿄10구에 출마한 와카사 의원의 당선도 불투명하다. 고이케 지사의 파리행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고이케 지사가 등장한 희망의당 선거 CM송은 일본에 부족한 것은 ‘희망’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과연 일본의 유권자들은 고이케 지사의 파리 출장을 보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일본 유권자들의 선택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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