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11월은 한국 언론史에서 가장 치욕적인 시기다. 전두환 신군부 보안사령부에 만들어진 언론반은 기회주의적인 언론인을 접촉해 언론사 내부 동정과 구조 등을 파악하고 필요한 정보를 수집해 이른바 ‘K공작’이라 불리는 언론장악 공작계획을 세웠다.
1980년 11월12일 보안사가 작성한 ‘언론창달계획’에 따라 언론사 사주들은 보안사에 소환돼 언론통폐합 조치에 이의가 없다는 각서를 제출했다. 이틀 뒤인 14일에는 한국방송협회, 신문협회 등이 총회를 열고 소위 ‘건전 언론 육성과 창달’에 관한 결의문을 내놓는다. 자율결의처럼 보이는 명백한 강제 조치로 신문사가 사라지고 방송계는 KBS가 MBC의 지배주주로, MBC가 지역 문화방송의 대주주로 통제권을 획득한다. 민영방송인 중앙일보의 동양방송, 동아일보의 동아방송 등이 KBS로 강제합병 당했다. 그리고 합동통신과 동양통신이 해체·통합되면서 연합통신이 설립되는데 그 역시 KBS·MBC가 지분을 갖는다.
마지막으로 이 조치를 마무리한 것이 언론기본법이다. 언론기본법은 표면상으로는 ‘언론의 공적 책무이론’을 기초로 한다. 언론의 형태는 규범형태로 분류하자면 다음의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공산주의 언론이다. 둘째는 지배이데올로기의 전파와 국민통제에 적극 협조하는 권위주의 체제하의 언론, 박정희 유신정권 하의 언론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언론체제와 대척점에 서는 것이 언론의 자유와 정치적 중립을 극대화하려는 자유주의 언론체제다. 그리고 여기에 언론의 공적 책임을 강조하는 쪽으로 발전된 공적참여주의가 있다.
전두환 신군부가 박정희 유신체제의 권위주의 통제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머리를 짜낸 것이 바로 공적참여주의 모델이다. 언론은 여론형성과 국가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므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야 하고 지방자치와 정치중립적 시민통제 아래 놓여야 한다는 것이 그 취지다.
하지만 전두환 신군부는 시민통제 아닌 권력통제 아래 언론 전체를 구겨 넣는다. 방송위원회, 시청자위원회, 방송심의, 언론중재, 방송광고공사 등 그럴 듯한 장치들이 마련되지만 책임자 임명을 정권이 쥐고, 방송통신사 지분은 KBS를 정점으로 수직계열화되고, 신문사 등록 허가와 취소권 즉 생사여탈권은 문공부 장관에게 쥐어주었다.
결국 한국 언론은 권력의 통치구조 속에 포함된 별정직 여론통제기관으로 공영 아닌 관영 내지는 관변기구가 된 것이다. 그리고 걸맞는 온갖 특혜도 누린다. 언론이 시민사회에 공적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최고 권력자를 바라보는 이런 체제들을 지나온 탓에 우리 언론은 겉으로는 자유주의 이념을 내세우며 언론 자유를 쉽게 주장하지만 내적으로는 사회책임과 공공성의 이념을 체득하지 못한 채 괴리를 빚고 있다.
언론인이 일하다말고 아무 거리낌이 없이 정계로 건너가고, 정당 선거캠프 종사자가 방송사 사장으로 건너오고, 언론인이 정계·공기업을 돌다 MC로 방송에 복귀하는 황당한 회전문, 자동출입문 인사는 언론이 통치체제의 일부였던 그 적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언론계의 구조와 관행, 의식 속에 80년 신군부의 ‘언론 창달’로부터 학습된 적폐들이 잔존해 있고 지난 9년 간 민주주의의 퇴행과 함께 악화되었다. 따라서 공적 성격의 방송사·통신사 경영진 교체에 성공한 이후에도 적폐 청산은 끝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 수고와 인내를 아프게 감내하지 않는 한 광장에 촛불이 밝혀질 때마다 우리는 변함없이 기레기라는 오명과 함께 거부당할 것이기에 길은 멀고 마음은 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