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사퇴 분위기가 감지되던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다시 버티기 모드로 전환한 분위기다. 고 이사장은 어제 오후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잘못한 것이 없는데 물러날 이유가 없다. 자진사퇴할 의사가 전혀 없다”며 강경한 의사를 밝혔다. 고 이사장은 지난주 구 여권 추천 김원배 이사가 사퇴한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진사퇴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혀온 바 있는데, 태도가 다시 달라진 것이다.
우리가 누차 강조해왔다시피 고 이사장의 퇴진 이유는 차고 넘친다. 그는 감사로 방문진에 입성한 2012년 이후 줄곧 MBC 경영진의 숱한 불법·부실·저질 경영을 비호해 왔다. 기소 의견으로 송치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김장겸 경영진의 각종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수수방관했으며, 오히려 ‘유휴 인력’에 대한 적극적인 격리를 주문하는 등 노동법 위반을 조장했다. MBC가 보인 숱한 정권 편향 보도에 대해 “애국시민들은 MBC만 본다”며 감쌌고, 보도의 불공정성을 지적한 경영평가보고서는 폐기해버렸다. 자회사가 제공한 차량으로 골프장을 출입하고, 방문진 업무 이외의 목적으로 MBC가 회원권을 소유한 골프장을 드나들었으며, 지방사 사장으로부터 골프와 선물 접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되는 등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고 이사장은 “추후 현금으로 정산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검찰 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MBC 사옥 매각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특정 사업가와의 유착 의혹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그의 퇴진은 시간문제이기도 하다. 김원배 이사의 사퇴로 구 여권 추천 이사는 4명으로 줄었고, 보궐이사 2인에 대한 내정이 조만간 현 여권에 의해 이뤄질 예정이다. 그러면 인적구조가 재편됨에 따라 새롭게 구성되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가 고 이사장에 대한 불신임 안건을 상정, 가결할 수 있게 된다. 김장겸 MBC 사장에 대한 해임안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상황은 분명히 고 이사장이 이끌어온 방문진이 자처한 것이다. 그런데도 고 이사장을 비롯해 구 여권 추천 이사들은 자기 발로 걸어 나가지 않겠다며 생떼를 쓰고 있다.
KBS 역시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에서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던 2009년 당시 국정원이 고대영 KBS 보도국장에게 보도 협조 명목으로 예산 200만원을 집행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주지하다시피 고대영 당시 국장은 현재의 사장이다. 국가정보기관이 공영방송 보도 책임자에게 보도 협조 명목으로 예산을 집행한 것이 사실이라면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다. 고 사장이 강력히 부인하고 있는 만큼 엄정한 조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또한 감사원은 이사진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에 대해 감사에 착수했다. 문제의 이사는 해당 의혹을 노조 측에 제보한 인물을 상대로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폭언을 퍼부은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공영방송 이사진은 이러한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고 퇴진을 결정하기는커녕 “정권의 언론 장악” 운운하며 버티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집요한 공영방송 장악 대행자 역할을 마다않았던 이들이, 공영방송 경영진의 불법·부실·저질 경영을 조장하고 방조한 이들이, 그것을 바로잡겠다는 구성원과 당국의 활동들에 대해 ‘방송 장악’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언어도단이 없다. 더 이상 이들의 헛소리를 들을 시간이 없다. 공영방송 노동자들의 파업이 벌써 50일을 넘겼다. 이들이 하루라도, 아니 1분이라도 빨리 퇴진하는 게 공영방송을 살릴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