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시대'의 독해

[글로벌 리포트 | 중국]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24일 막을 내린 제19차 중국 공산당 당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신시대(新時代)’란 키워드를 제시했다. 18일 개막식 정치보고 연설에서 그는 이 단어를 36차례 사용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새로운 과제가 출현하고, 새 시대를 헤쳐나갈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새 로드맵을 제시한 게 시 주석 개막연설의 큰 줄기였다.


왜 신시대일까. 한마디로 말해 ‘세상이 바뀌었다’는 게 시진핑 연설의 핵심이다. 직접적인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시진핑의 신시대 진입은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에 종언을 고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1949년 공산 정권 수립 이래의 중국 현대사를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와 덩샤오핑 시대,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될 시진핑의 시대로 크게 나눈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덩의 시대는 그가 1978년 공산당 제11기 3중전회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개혁 개방 노선을 천명한 이래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 집권기를 거쳐 시진핑의 집권 1기까지 이어진다. 중국 공산당의 사가(史家)들은 이번 19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중국 현대사의 세번째 시대, 즉 시진핑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기록할 것이다.


시진핑의 신시대 선언은 공산당 이론가들이 동원돼 정치한 이론화 작업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공산주의 이론체계에서 시대의 전환은 새로운 모순의 출현과 필연적 인과 관계에 있다. 마오의 시대는 말할 것도 없이 계급 모순이 주(主) 모순이었다. 공동생산, 공동소비의 이상주의적 공산사회를 잘 들어맞지 않는 현실에 성급하게 끼워 맞추려다 재앙을 부른 1950년대의 대약진운동이나 중국 대륙을 무차별적 계급투쟁의 광풍으로 몰아넣은 1960년대의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배경도 그런 계급 모순관으로 설명이 된다.


1976년 마오 사후 과도기를 거친 뒤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덩샤오핑의 집권으로 중국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시대가 바뀐 건 새로운 모순의 출현과 동의어였다. 중국 공산당은 1981년 11기 6중전회에서 ‘인민의 물질문화 수요와 낙후한 생산 사이의 모순’을 새로운 모순으로 규정했다. 쉽게 말해 못 먹고 못 사는 게 최대의 모순이란 의미였다.


당시 천윈(陳雲)을 비롯한 보수파들은 문혁 때 자본주의 추종자로 몰렸던 덩샤오핑과 이론투쟁을 전개하며 덩의 노선에 반기를 들고 있었다. 그 때 덩이 내세운 게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이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회주의 초급 단계의 중국에서는 낙후된 생산력을 끌어올리는 게 선결 과제였고 고양이의 색깔이 검은지 흰지 가릴 계제가 아니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나온 게 선부론(先富論)이다. 실용주의자 덩은 낙후된 생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잘 살 수 있는 사람부터 먼저 잘 살 것’을 주창했다. 잘 사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며 절대 평등주의에 갖혀 있던 당시 중국으로선 혁명적 전환이었다.


중국이 개혁 개방을 시작한지 만 39년이 지났다. 시장경제 요소의 본격 도입에 나선 덩샤오핑의 1992년 남순강화(南巡講話)를 기점으로 잡더라도 사반세기가 지났다. 그 사이 중국 경제는 고도 성장을 이뤘다. 먹고 사는 문제가 주 모순이던 사회가 40년이 채 못돼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된 것은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디자이너) 덩샤오핑조차 꿈도 꾸지 못했던 기적이다. 덩샤오핑은 100년은 가야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봤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다시 새로운 모순이 나타난다. 시진핑이 지난 18일 개막연설에서 규정한 지금 시대의 모순은 ‘인민의 좋은(美好) 생활에 대한 수요와 불균형·불충분 발전간의 모순’이다. 바꿔 말해 이제는 다시 골고루 잘 사는 사회를 지향해야 할 때가 왔다는 의미다.


하루아침에 이런 생각을 해낸 것이 아님은 그의 2015년 11월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싱가포르 국립대학 연설에서 “중국은 덩샤오핑 이래 일부가 먼저 잘 살게 되고나면 (1단계)부자들이 나머지를 끌어 올린다(2단계)는 선부론을 따랐다”며 “중국은 1단계를 이뤄냈다”고 말했다. 남은 과제는 먼저 잘 살게 된 부자들이 나머지를 끌어올리는 2단계의 성취다. 시진핑의 신시대 선언은 바로 이런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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