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연인원 1700만명이 참여, 권력을 사유화해 온 권력자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시민들이 쫓아낸 촛불집회 1주년 시작을 즈음해, 주요 언론 매체들이 잇따라 그 의의와 한계를 성찰하고 있다. 헌법 1조가 상징하는 국민주권의 작동원리를 실감하게 해 준 시민혁명, 시민 개개인이 정치 참여의 효용성을 체득하게 해 준 민주주의의 학습장, 화석화된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 계기 등 말의 성찬이 한창이다.
시민의 힘으로 불법을 저지른 권력자를 징치했다는, 목표 달성의 성과를 되새겨 보는 일도 필요하지만 사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촛불집회가 23차례나 진행되는 동안 광장에서 터져나왔던 각 분야의 모순과 문제점들이 ‘촛불 이후’ 과연 개선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는 일일 터이다. 이른바 적폐 청산에 대한 중간 평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촛불 이후 우리 언론은 과연 어떻게 달라졌을까. 언론 적폐는 청산되고 있을까. 기실 미르재단과 K 스포츠재단의 배후에 최순실이 있다는 한겨레의 보도, 태블릿 PC를 통해 국정의 기밀정보가 최순실에게 누출됐음을 밝힌 JTBC의 보도, 최순실의 영상을 최초로 공개한 TV 조선의 보도 등 권력이 감추고 싶어하는 사실에 접근해 가고자 하는 언론의 집요한 노력은 촛불을 타오르게 한 원동력이었음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언론은 동시에 ‘국정농단’의 방관자 혹은 방조자, 혹은 공범이었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청와대부터 각 정부 부처까지 비선 권력에 휘둘렸고 이들을 감찰해야 할 사정 당국도 이를 묵인했지만, 언론은 이를 감시하지 못했다. 계기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미르ㆍK 스포츠재단 의혹이 불거지기 이미 1년 반 전 정윤회 문건 파동 등 국정농단의 단초가 드러났는데도, 대다수 언론은 추적을 소홀히 했고 이는 결국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피해로 돌아왔다.
대통령의 순방 패션과 같은 권력자의 신변잡기 쫓기, 외국어 연설 찬양 같은 용비어천가, 세월호 탑승학생 전원구조 같은 오보를 낳은 속보경쟁, 대학특혜 입학 같은 대중들의 시기심을 자극해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국외자로 배제시켜버리는 저급한 선정주의 등 박근혜 정권 내내 이어졌던 한국 언론의 구습과 폐해는 촛불 아래 환하게 드러났다.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 조기대선과 문재인 정부 출범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1년은 사회 각 분야의 구습과 결별할 수 있는 대변혁기에 틀림 없었다. 하지만 언론의 자성은 그때뿐이고, 구체제 타파의 시대정신과 거꾸로 가고 있다.
특히 보수 언론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최저임금 인상, 탈원전 정책, 남북 화해, 방송 공영성 강화 등 시대정신이 낳은 새 정부의 개혁과제들을 ‘비난’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부패한 권력자를 내쫓을 때는 한 편에 서는 것 같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정권이 들어서자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새로운 권력의 일거수 일투족은 자유롭게 비판하면서도, 그만큼이나 중요한 구 적폐의 청산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발동을 걸지도 않은 개혁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심지어는 ‘화합’이라는 이름으로 쫓겨난 권력자를 두둔하기까지 한다.
촛불 1주년을 맞아 한국 언론이 게이트의 공범이었던 자신들의 과거 잘못을 회오하고 권력의 진정한 감시자이자 개혁의 든든한 동반자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