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나 유명인의 막말 수준의 발언을 검증 절차 없이 받아쓰는 방식의 보도는 한국 언론의 일상이 된지 오래다. 그러나 이들의 발언이 사실(Fact)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슈가 되면 일단 보도하고 보는 행위는 오보나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다. 독자들은 이들의 발언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분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얼마 전 정미홍 더코칭그룹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한 청와대 김정숙 여사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은 글을 많은 언론이 그대로 받아 쓴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언론의 받아쓰기 보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변화는 없었다. 최근 자유한국당의 국정감사 보이콧에 대한 보도에서도 받아쓰기는 계속됐다. 대다수의 언론사들은 방통위의 방문진 보궐이사 선임을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날치기 폭거’로 보고 국감을 보이콧하겠다는 자유한국당의 주장을 받아쓰는 데에만 급급했지, 그 주장이 과연 합리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이들의 주장이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수많은 방송 언론인들의 목소리와 다르고, 방송문화진흥회법에 명시된 법조항에도 어긋나는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언론의 받아쓰기 행태를 보면서 얼마 전 알게 된 한 프랑스 저널리스트가 떠올랐다. 그의 이름은 뱅상 꼬꺄즈(Vincent Coquaz). 리베라시옹의 팩트체킹서비스인 ‘데장톡스(Desintox)’에서 일한 바 있는 그를 지난 9월 방송기자연합회가 마련한 팩트체크과정 프로그램을 통해 만났다.
SNS에서 유통되는 가짜뉴스나 루머보다는 정치인이나 공적 인물들의 발언을 검증하는 작업에 집중하는 데장톡스는 리베라시옹 사이트의 다양한 섹션들 중 가장 인기 있는 섹션이다. 특히 지난 대선 기간 동안에는 수많은 독자들이 데장톡스의 기사를 보기 위해 리베라시옹 사이트를 방문했다. 데장톡스의 저널리스트들은 아침부터 쏟아지는 수많은 정치인들의 발언을 찾아내고 이들 중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발언들만을 모아 검증하고 분석한다.
이러한 활동이 정치인들의 태도에 어떤 변화를 이끌어냈는지를 묻는 한 한국 저널리스트의 질문에 뱅상 꼬꺄즈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정치인들은 언제나 거짓말을 해왔다. 그들이 거짓 약속이나 발언을 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들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중요한 건 그들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치인들의 발언을 마치 사실(Fact)인냥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발언을 검증하고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저널리스트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 내내 그의 태도는 단호했다. “적어도 언론이라면 정치인들의 발언을 무작정 받아쓰는 행위는 멈춰야 하며, 이들의 발언이 거짓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도록 독자들에게 다양한 근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이 아무 얘기나 하도록 내버려두는 꼴이 된다”라고 신념에 찬 어조로 말하는 그는 이십대 후반의 젊은 저널리스트지만 자신의 직업에 대한 확실한 사명감을 갖고 있는 듯 했다.
뉴스는 주장이 아닌 사실에 관한 정보다. 그러므로 사실(Fact)에 입각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언론이 지켜야할 최소한의 본분이다. 이제라도 언론은 정치인들의 발언을 검증 절차 없이 받아쓰는 행위를 멈추기 바란다. 나아가 이들의 발언을 분석하고 해석하며, 거짓 발언이라면 그 근거와 더불어 명확히 알려주기 바란다. 적어도 언론이고자 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