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정부와 여당에 의해 임명되어지는 공영방송의 사장이 정권으로부터, 나아가 정치로부터 자유롭게 방송사를 운영한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공영방송 사장을 정치권이 아니라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제3의 위원회 등을 만들어 선임하자는 의견들이 대두되어 왔다.
하지만 막상 정권을 잡은 권력 입장에선 공영방송 사장 임명 권한을 선뜻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꼭 정권 홍보 방송을 만들려는 탐욕이 아니더라도 혹시나 정권에 적대적인 사람이 임명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막강한 힘을 지닌 공영방송이 정부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취할 경우 정권 입장에서 그 부담감은 당연히 엄청난 것이리라.
그렇다고 해서 원론적으로 문제가 있는 기존의 사장선임 방식을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는 법이다. 특히 지난 9년여의 보수 정권동안 이루어진 언론장악은 일일이 사례를 나열하기도 어려울 만큼 그 폐해가 엄청나다는 걸 확인시켜줬다. 당연히 그 폐해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장을 마음대로 임명한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이러한 극단적 폐해를 막기 위해 발의된 법안이 소위 ‘언론장악방지법’으로 불리는 법안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그 취지가 공영방송을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여당과 야당 모두가 동의한 사람만이 사장이 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쉽게 말해 여당과 야당에 대한 보도의 ‘기계적 균형’을 구조적으로 담보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공영방송을 정치권에 더욱 ‘기계적으로 종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법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사정은 있다. 지난 정권의 언론장악이 너무 극단적이다 보니 일단 기계적 균형이라도 담보하려는 당시의 급박한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언론장악에 앞장서던 정권이 퇴진했기 때문이다. 이젠 다시 공영방송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려는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부분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못하다. 우선 정치권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언론에 대해 근본적인 불안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성향을 떠나 공영방송이 정치적 자장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 것에 대해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설사 공영언론의 정치적 독립에 원론적으로 동의한다고 해도 그것을 위해 아주 적극적으로 노력하기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언론계 역시 상황이 녹록지는 않다. 노조가 장기파업을 이어가고 현 사장이 버티는 상황에서 논의를 현 사장 퇴진 이후의 새로운 선임 방식까지 이어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는 여야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 방송법 개정이 머지않아 다가올 신임 사장 선임 시점 이전에 통과시켜 적용시키기가 불가능하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이번 정권에서도 공영방송의 정치로부터의 독립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이슈에 대한 논의가 지금보다 좀 더 활발할 필요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활발하게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로선 이 부분에 대해 눈에 띄게 그리고 꾸준히 이슈 파이팅을 하는 분은 MBC 해직 언론인 이용마 기자 정도다. 최근 발간한 본인의 저서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본인의 지론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물론 누군가는 국민이 직접 공영방송 사장을 선임 한다는 건 지나치게 이상적인 순진한 발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내정된 YTN 신임 사장에 대한 YTN 노조의 강력 반발이나, 국감에서 자신의 거취를 언론장악방지법의 여야 합의로 내건 고대영 KBS 사장의 발언은 모두 본질적으로 정치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공영방송의 구조적 원인, 구조적 ‘약점’에 기인한 것이다. 즉 ‘국민이 뽑은 사장’의 필요성은 이상적이지도 순진하지도 않은 시급한 현실적 문제인 것이다. 다행히도 국민들의 자발적인 촛불로 탄생한 현 정권 아닌가? 지금이 공영방송을 ‘제도적이고 항구적으로’ 국민의 품에 안겨줄 적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