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과 사연이 만들어낸 삶의 흔적들

'제주, 오름, 기행' 펴낸 손민호 중앙일보 기자

“인연은 모진 것이었다.” 반 백 줄 여정 중 오롯이 남을 문장은 결국 이거 하나일지 모른다. 돌아보면, 아니 돌아볼 수 있는 때에 당도해서야, 시간이 저절로 뱉어내게 만드는 한숨의 이형(異形). 손민호 중앙일보 기자가 쓴 <제주, 오름, 기행>은 이를 담은 여행책이다. 오십에 다가간 그가 남편이자 아빠로, 20년 기자생활 중 팔 할을 여행기자로 살고서 책이 될 수 있었던 얘기. “압도하는 한라산이 되지 못하고 엎드린 오름으로 사는 인생이 더 많다는 걸 깨달았다”고, “잘난 줄 알았던 내가 뻔한 아재가 됐는데 이제야 작은 게 보인다”고 말할 수 있게 된 후에야 책이 될 수 있었던 인연은, 모진 것이다.


2002년. 그때가 시작이었다. 회사가 여행기자로 그를 발령냈다. 3~4년차 기자의 의지는 아니었다. 건강이 안 좋았다. "DJ 정부 내내 게이트 취재를 하고, 사회부 기자로 서울 시내 경찰서 31곳을 다 돌면서" 먹은 술이 문제였다. 그는 “밸런타인 17년짜리 한 병 큰 걸 양맥으로 만들면 폭탄주가 40잔이 나온다”고 했다. 회사의 강권에 받은 건강검진. 의사는 “어떻게 서른에 간 수치가 이러냐”면서 간경화 직전이라고 진단했다. 백 번 넘게 제주를 들락거린 인연은 그렇게 맺어졌다. 소똥밭 오름서 잠들고, 제주 구석구석을 밟았다. ‘바람을 찍다 간’ 사진작가 고 김영갑 형과 닿았고, ‘악명 높은 기자 선배’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을 마주했다. 이장, 어촌계장, 해녀, 숲해설사를 만났다. 땅의 연과, 사람의 연은 다르지 않았다.

“제주 올레 다니며 비바람 맞으며 펑펑 울며 걷는 분들 많이 봤어요. 사연이 있을까 싶죠. 결국 제주서 제가 본 장면들도 내력을 알면 딱해져요. 해녀들, 할망들 얘기 듣고 나면 감귤 하나 못 먹게 돼요. 얼마나 귀한 건데, 목숨이랑 맞바꾼 건데. 그런 것들이 자꾸 밟히는 거죠.”

이것은 여행책인가. 단언컨대 그렇다. <제주, 오름, 기행>은 기자가 쓴 여행책이다. 자연인으로서 ‘나’를 덜 숨겼을 뿐, 기자가 세상과 연을 맺는 방식, 즉 취재와 기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는 본질은 다르지 않다. “우울한 일”, “의무감”,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밥벌이’로서의 여행은 그런 것이었다. 여기 휴가 때 가족을 끌고 ‘출입처’ 제주에 가고, 다른 보직을 맡고도 계속 주변을 어리대는 일이 끼어든다. “애정”이라는 것. 가이드북이 아니라 성산일출봉을 육지서, 바다서, 하늘서 보고, 지질을 따지고, 역사를 끌어오고, 신화의 공간으로 되살린 책을 쓴 이유는 그랬다.

“오름 관련된 제대로 된 텍스트가 없어요. 관광버스로 오르고 사진을 찍는데 다들 잘 몰라요. 그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함덕 서우봉 오름이 4·3사건 때 가장 끔찍한 학살 현장이었다는 걸 굳이 알아야 하나. 글쎄요. 모르고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것도 문제 있지 않나. 여행기자로서 제시하는 거죠.”

생은 결국 ‘동사(動詞)’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손 기자의 경우 그 동사는 ‘나다’, ‘살다’, ‘들다’, ‘걷다’, ‘울다’였던 것 같다. 남는 건 동사와 동사가 서로 부딪치며 만든 흔적뿐이란 주장. 제주 368개 오름 중 40개를 골라 이를 각 동사 아래, 또는 사이사이 주제와 이야기에 따라 분류해놓은 건, 그러니까 오름과 사람 간 그 마모의 자취를 대하는 그의 입장이다. “얼마 전 대관령옛길을 취재했어요. 아흔아홉 굽이를 도는 데 길이 이만큼 파여서 나무뿌리가 제 눈높이에 와 있었어요. 이만큼이 길에 세월인 거죠. 제가 지금 양 무릎에 보호대를 하고 있는데 같이 닳는 거죠. 서로가 서로에 새겨지는 거죠.”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