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최고 근로소득 톱3 '슈퍼셀' 차지

[글로벌 리포트 | 핀란드]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전 YTN 기자

최원석 전 YTN 기자 매년 11월1일은 핀란드 국세청이 ‘소득 순위’를 발표하는 날이다. 모든 국민의 지난해 소득결과를 공개한다. 핀란드 언론은 국세청 자료를 분석해 ‘누가 제일 많이 벌었나?’와 ‘누가 제일 세금 많이 냈나?’를 기사로 다룬다. 언론 보도는 주로 정치인이나 유명 사업가에게 주목하는 편이지만, 소득 순위가 높은 일반 시민도 인터뷰한다. 나도 국세청에 ‘전화 한 통’만 하면 앞집 뒷집 가족이 얼마나 버는지 알 수 있다. 주요 도시 28곳에선 지방 세무서에 설치된 단말기에서 조회해볼 수도 있다. 해당 납세자의 출생연도와 사는 지역, 성명만 정확히 알면 된다.


각 언론사 기자들은 일찌감치 발표 당일 단말기 사용을 예약해두고 서둘러 ‘기사거리’를 찾는다. 사회적으로 용납하지 않는 일 중 하나가 탈세(脫稅)이기 때문일까? 국민 누구든 서로의 소득을 알 수 있도록 정부가 자료를 공개하는 점이 흥미롭다. 일단 올해 핀란드에선 누가 돈을 많이 벌고, 또 세금을 냈는지 궁금해 나도 언론 보도를 살펴봤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이름은 노키아(Nokia)의 전 CEO인 요르마 올릴라(Jorma Ollila)였다. 1985년 노키아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 1999년부터 2006년까지 CEO를 맡았던 올릴라는 이른바 이 회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이후에는 정유회사 셸(Shell) CEO를 맡기도 해, 가장 소득 높은 핀란드인 순위에서 몇 번이나 1위에 올랐다. 2007년에는 연간 근로소득 970만 유로, 한화로 120억원가량을 벌어들였다.


국세청이 자료를 발표한 날, 공영방송 윌레(Yle)는 ‘노키아 베테랑 올릴라, 자본소득 0유로로 급감’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냈다. 2015년에는 올릴라가 노키아 지분을 팔아 자본소득(비임금 소득) 4000만 유로를 챙겼지만, 2016년에는 자본소득이 ‘제로’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한때 최상위권이었던 그의 근로소득(임금 소득)은 250만 유로, 2016년 기준 133위로 내려왔다. 수십 억 연봉은 호시절에나 가능했던 것일 테니, 노키아가 핀란드를 대표했던 시대는 분명 과거가 되었다. 그렇다면 노키아와 올릴라의 바통을 이어받은 건 누굴까? 최고 소득자는 새로운 산업의 사람들이었다.


최상위 근로소득자 3명은 모두 게임회사 슈퍼셀(Supercell)에서 나왔다. 창업자이자 CEO인 일까 빠아나넨(Ilkka Paananen) 4600만 유로(한화 약 600억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미꼬 꼬디소야(Mikko Kodisoja) 4000만 유로, 그리고 창업자이자 서버 전문가 존 드롬(John Derome) 소득이 1300만 유로였다. 이 가운데 존 드롬은 근로소득과 자본소득을 합산한 순위에서 7400만 유로(960억원)로 전체 1위를 차지해 특히 화제에 올랐다. 소득의 30%에 가까운 2700만 유로(350억원)를 세금으로 냈다. 지난 10년 동안 이렇게 소득이 높은 납세자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높은 금액이다.


모바일 게임 ‘클래시 오브 클랜’과 ‘클래시 로얄’ 개발사인 슈퍼셀은 2016년에 매출액 2조6000억원, 영업이익 1조15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슈퍼셀이 지난해 낸 법인세만 3000억원가량(1억2000만 유로)이었다. 슈퍼셀 대주주인 까혼 3(Kahon 3)에 이어 핀란드에서 두 번째로 법인세를 많이 낸다. 납세자협회(Veronmaksajat) 회장 떼무 레흐띠넨(Teemu Lehtinen)이 윌레 인터뷰에서 말했듯 “슈퍼셀은 우리의 새로운 노키아”라는 표현이 나쁘지 않아 보인다.


핀란드 납세 순위 보도를 살펴보다 한국 뉴스를 보니, 네이버와 구글의 신경전이 한창이다. 지난 9일 네이버 한성숙 CEO는 2016년 기준 매출 2조5900억원, 법인세 2700억원을 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구글도 한국에서의 매출과 수익을 공개하라고 공격했다. 사실 국정감사에 나온 이해진 창업자의 발언이 아니었으면 이 같은 ‘납세 공방’이 가능했을까 싶다. 다만 구글의 매출과 법인세 문제는 최근 EU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으니, 기왕 판이 커진 마당에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더해 언론에서 삼성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를 둘러싼 추가 과세 문제도 적극적으로 살폈으면 좋겠다. “전현직 임원 486명 이름으로 계좌를 만들고, 여기에 있던 돈 4조4000억원을 챙겼다”는데 핀란드처럼 국세청이 소득과 납세 기록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곳이었다면, 이 회장 같은 재벌의 행태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 사회 투명성과 공정성의 기반인 소득과 납세 문제를 다룰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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