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적 굿판에 춤을 춘 한국 언론

[스페셜리스트 | 금융]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차장·신문방송학 박사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차장 미디어는 단순한 정보 전달자가 아니다. 고유의 의제 설정(agenda-setting), 틀짓기(framing), 점화(priming) 기능 등을 통해 여론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의제 설정은 언론의 본분이자 여론 형성 과정의 시발탄이다. 미디어는 의제 설정 기능 자체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대중 매체가 중요하게 다룬 이슈는 독자들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프레임은 상황이나 이슈를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적 틀이다. 뉴스 프레임은 뉴스 소비자가 사회적 이슈나 상황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식, 즉 ‘공중의 프레임’에 작용한다. 점화는 매체가 어떤 이슈는 버리고 어떤 이슈는 선택 보도하면서 뉴스 소비자의 판정 기준을 변하게 만드는 행위다. 미디어가 일반 대중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면 대중들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관련 사안이나 이슈를 판단한다. 미디어의 오류는 여론 왜곡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미디어의 이같은 기능은 ‘양날의 칼’이다. 휘두르기에 따라선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 매체의 의제 설정이나 틀짓기, 점화 등을 통해 여론의 해석이 바뀌거나 이슈 자체가 변한 사례를 찾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다. 최근 사회적 파문을 불러온 ‘김광석 타살 의혹’ 소동은 경솔하게 여론에 영향력을 휘두른 언론의 어이없는 자책골이다. 한 기자가 다큐멘터리 독립 영화를 통해 오래 전부터 낭설로 떠돌던 김광석 타살 의혹을 미스터리로 포장해 공론화했다. 곧이어 이를 추종한 기성 언론들이 마녀사냥식 보도를 양산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렸다. 하지만 한바탕 소동은 ‘혐의 없음’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이는 여론 형성 과정에서 언론의 오작동을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다. 한 기자가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의제를 설정한 뒤 음모론적 프레임을 들이댔다. 여기에 대부분 기성 언론들은 그의 선정적 프레임을 그대로 차용, 프라이밍 기능을 통해 이슈를 증폭시켜 나갔다. ‘황색 저널리즘’에 중독된 매체들은 사실 관계에 관한 기본적인 팩트 체크조차 소홀한 채 뉴스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춘 편파 보도를 이어갔다. 이런 과정에서 언론의 자정 작용인 ‘프레임 경쟁’은 작동하지 않았다. 한국 언론의 고질인 보수와 진보 간 대립적 프레임이나 신·구매체 간 견제조차 종적을 감췄다.


시민 참여형 대안 프레임과 프라이밍을 수행하며 전통 언론과 경쟁하고 있는 인터넷 언론들도 기성 언론과 다름없는 한계를 드러냈다. 오히려 온라인 공론장의 숙의적 민주주의의 독초로 지목돼온 댓글의 부정적 특성만 여지없이 확인시켰다. 대부분 언론이 하버마스의 ‘공론장’ 역할을 포기한 채 한 기자가 깔아놓은 음모론적 굿판에 춤을 췄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언론은 공론장 관리자로서 사회의 다양하고 갈등적인 의견을 표출해 문제 해결을 돕는 역할을 갖고 있다. 이 역할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수행하기 위한 규범이 바로 ‘저널리즘’이다. 언론이 자유를 보장받고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지원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소동에선 저널리즘의 기본 원리가 실종돼 버렸다. 미디어가 사건의 검증 없이 뉴스 소비자의 관심을 쫓아 맹목적인 경쟁 보도로 내달릴 때 여론을 호도하는 사태를 낳게 된다. 김광석 소동은 저널리즘의 기본을 망각한 하이에나 언론들의 또 하나의 부끄러운 치부로 기록될 것 같다. 언론은 이를 계기로 저널리즘의 기본에 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우리는 과연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모으고 해결책을 만들어가는 민주적 공론장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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