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파괴의 산 역사이자 증인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김장겸 MBC 사장이 지난 13일 해임됐다. 방송문화진흥회는 이날 이사회를 소집해 김 사장에 대한 해임안을 의결했고, 당일 저녁 열린 주주총회에서 이 해임안이 확정됐다. 김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72일간 총파업을 벌여온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오전 9시부로 파업을 잠정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했다. 그러나 보도부문의 경우는 김장겸 체제에서 선임된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보직부장 등의 일괄사퇴를 요구하며 제작거부 형태의 쟁의행위를 이어갈 방침이다.
우리가 올해 초 선임 당시부터 지적해 왔듯 김장겸은 MBC 사장 자격이 없는 인물이었다. 2011년 정치부장을 시작으로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등을 거친 그의 출세는 MBC 뉴스의 추락과 정확하게 반비례한다. 세월호 보도 참사, 최순실 보도 참사는 물론 백남기 농민 사망, 국정원 대선 개입,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 의혹 등 옛 보수정권이 민감해 하는 문제에 대해 MBC는 한결같이 외면해 왔다. 그러면서 당시 야권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무리하게 논문 표절 혹은 병역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가 오보로 판명돼 망신당하기도 했다. 그 시절의 보도책임자가 김장겸이다. 김장겸은 또 자신의 왜곡되고 비틀린 저널리즘관을 뉴스에 관철시키기 위해 ‘말 안 듣는’ 후배 기자들에게 부당전보와 징계의 칼날을 휘두르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했다. 종합적으로 김장겸은 MBC 뉴스의 신뢰도, 영향력, 공정성 하락을 이끈 일등공신인 것이다. 책임을 지고 진작 물러났어야 할 인물이 이제야 심판을 받았다. 사필귀정이지만 동시에 만시지탄이다.
그럼에도 김장겸은 해임 직후 입장문을 내고 “권력으로부터 MBC의 독립을 지켜내지 못해 송구하다”고 밝혔다. 자연인이 된 마당에 착각은 그의 자유이지만 재차 분명히 해둔다. 그가 강조하는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은 보수정권을 향해서도 해당되는가? 만약 그렇게 생각하고 실천하며 지난 세월 살아왔더라면 오늘날 그가 처한 현실은 달랐을 것이다. 보수권력에 빌붙어 MBC의 독립을 망친 장본인, 자신이 지지하는 정권의 정치철학과 다르다는 이유로 억압과 장악을 자행한 김장겸에게 있어 오늘날 그의 현실은 자업자득일 뿐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2010년 김재철의 등장 이후 MBC 구성원들은 오랜 시간 지난한 공정방송 투쟁을 벌여왔다. 모든 것을 걸고 싸웠던 싸움에서 패배하고 그 후폭풍을 몇 년에 걸쳐 온 몸으로 감내하기도 했다. 한 세대 전 해결된 줄 알았던 ‘방송 민주화’라는 가치의 극단적인 퇴행을 경험하고 그 굴절된 현실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조직 전체가 너무 큰 내상을 입었다. 그러나 많은 역경을 겪으면서도 MBC 구성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며 싸웠고 그 결과 적폐 체제의 핵심인 김장겸을 몰아냈다. 김장겸 해임의 순간 눈물 흘린 MBC 구성원들이 많았던 것은 감격과 함께 지난 세월 응축된 감정이 결합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김장겸을 넘어선 MBC 구성원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꽃길이 아니라 폐허다. 자축에 안주하기에는 그들 앞에 놓인 과제가 많고 또 엄중하다. 김장겸 체제의 잔재를 정리하고, 무너진 공영성, 공정성, 신뢰성을 일으켜 재건하기 위한 치열한 토론과 모색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 다시는 이런 퇴행을 겪지 않기 위한 법적, 제도적 개선 역시 추진 과제다. 여전히 무능한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 MBC의 문제, 또 방송사 내부의 비정규직과 중규직 문제에 대한 현황 파악과 개선 모색 등도 중요한 문제다. 어느 것 하나 쉬운 문제가 없지만 MBC 구성원들이 잘 풀어나가리라 기대한다. 언론계와 우리 사회 또한 관심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