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 간섭 벗어나기, 이제 시작일 뿐"

임명동의제 이끈 윤창현 SBS 노조위원장
후보자 다방면 평가 적극적
'인사권자 바라기' 관행 변화
투표율 높아야 제도 유의미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제 진짜 잘 해야 하거든요.”
윤창현 전국언론노조 SBS 본부장의 얼굴은 마냥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이 많아보였다. 지난 23일 SBS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예전에는 잘못되면 대주주 핑계대면서 면피하거나 술자리 안줏감으로 삼고, 자기는 회사의 피고용인일 뿐이라는 객체화 경향이 구성원들 사이에 강했다”며 “그런데 임명동의제가 도입됨으로써 구성원 개개인이 책임을 나눠지게 됐다. 우리가 동의한 사장이나 본부장이 잘못하면 우리에게도 책임이 오게 됐다”고 말했다.


SBS 노사는 지난달 13일 대표이사 사장을 비롯한 보도·편성·시사교양 부문 최고 책임자에 대한 임명동의제 시행에 합의했다. 방송 사상 최초로 도입된 임명동의제로, 이 제도에 따르면 사장은 SBS 재적인원의 60%, 보도 최고책임자는 50% 이상이 반대하면 임명할 수 없게 됐다.


윤창현 전국언론노조 SBS 본부장 이 결과물을 쟁취하기까지 노조가 들인 노력은 컸다. 지난 8월 말 ‘방송 사유화 진상 조사 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킨 노조는 이후 여러 차례 대주주의 보도 개입 의혹을 폭로하며 윤세영 회장 일가를 일선에서 퇴진시키고, 진통 끝에 임명동의제를 얻어냈다. 윤창현 본부장은 “조직이 중첩된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신뢰의 위기와 구조의 위기가 그것인데 모두 잘못된 대주주와의 관계 설정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며 “결국 대주주가 방송에서 손을 떼야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배수의 진을 치고 싸웠다”고 말했다.


가장 큰 계기는 지난해 촛불혁명이었다. 윤 본부장은 “박근혜 체제 하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있었지만 내부의 싸움을 뒷받침해줄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국민들이 길을 열어줬다”며 “그동안 편안한 길을 택하며 언론을 망쳐온 사람들의 최일선에 있던 사람이 각 방송사 사장들이었다. 지금의 제도가 그런 사람들을 끊임없이 재배출하는 도구였기에 이 부분을 제어하지 않고는 다른 좋은 제도를 아무리 만들어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SBS는 임명동의제 시행 절차에 돌입했다. SBS와 SBS A&T의 대표이사 사장, 보도·편성·시사교양 부문의 최고 책임자들이 내정됐고 처음으로 구성원들의 심판대 앞에 섰다. 윤 본부장은 “일단 구성원들의 관심이 높은 것 같다. 여러 방면으로 후보자들을 평가하고 있다”며 “수동적 태도가 적극적으로 변화한 것부터 긍정적”이라고 평했다.


한편으로 그는 회사가 망가지든 말든 인사권자만 쳐다보던 관행 역시 변화할 거라 기대했다. 윤 본부장은 “대주주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자리가 보장됐던 문화들이 조직을 죽여 왔는데 이제는 아래로부터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구조로 바뀌었다”면서 “선임된 사장 역시 구성원들을 의식해 문제적 인물들, 적폐 인사를 주요 보직에 앉힐 수 없을 것이다. 임명동의제가 여러 가지를 바꿀 수 있는 키포인트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모든 걸 이루기 위해선 임명동의제가 제대로 정착되는 것이 먼저다. 윤 본부장은 높은 투표율을 그 조건으로 꼽았다. 윤 본부장은 “이번 투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투표율”이라며 “재적 60%의 반대이기 때문에 최소한 60% 이상의 투표율이 나와야 한다. 투표율이 낮아 무조건 통과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게 최악”이라고 했다.


방송법에 임명동의제 정신을 담아내는 것 역시 과제로 남아 있다. 윤 본부장은 “임명동의제가 방송개혁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며 “특별법인 방송법의 의미를 잘 이해하면 이 부분을 법제화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생각이 든다. 방송법의 정신을 가장 충실하게 반영할 수 있는 문제로써 임명동의제를 다뤘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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