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복잡한 얘기로 핑계대거나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공영방송 MBC를 지키지 못하고 파행을 거듭한 가장 큰 책임은 저희 MBC 구성원 모두에게 있음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좋은 방송으로 보답하겠습니다.”(11월 20일 <시선집중> 오프닝 중)
지난 20일 오전 6시 MBC라디오에 새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장겸 사장의 해임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지 80여일만의 복귀다. 심의국으로 쫓겨나 5년 만에 마이크를 잡은 변창립 앵커는 편향적인 진행으로 하차 요구를 받은 신동호 앵커의 후임으로 시선집중을 맡게 됐다. 신 앵커보다 8년 선배이자 아나운서국의 최고참인 변 앵커는 “그 사이 MBC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도나 이미지가 추락해 시선집중의 경쟁력도 많이 떨어졌다”며 “이번에 진행을 맡게 되면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놔야 내년에 새로 맡을 진행자가 본격적으로 방송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에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시선집중은 MBC 간판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다. 청취율 8~10%를 오르내리며 동시간대 압도적인 1위였다. 불과 5년 전 ‘손석희의 시선집중’ 시절 이야기다. 당시 MBC 안팎에서는 정부의 입김을 못 이긴 경영진이 손 앵커를 내몰았다는 논란이 일었다. 실제로 사측은 공정방송 파업에 가담한 200여명의 언론인을 해고, 정직, 부당전보 등으로 징계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후임 신동호의 시선집중이 보도기능을 상실하며 청취율 3%까지 내리막을 걸은 이유다.
“가슴 아프죠. 회사가 언론으로서 똑바로 서지 못하고 정치 바람에 휘둘리면서 아픈 과정을 겪은 거라고 생각해요. 지난 9년 사이에 MBC가 붕괴해가는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지 그것을 막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편승해서 개인의 영달을 꾀했던 사람들은 적절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84년 입사해 33년간 MBC맨으로 몸담으며 투쟁의 역사를 지켜본 변 앵커에게는 최근 승리한 파업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이번 파업은 촛불 시민들이 이미 든든한 반석을 다져놓으셨고, 저희가 격려와 지지 속에서 힘을 보태서 조직 내부의 걸림돌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었다”며 “이렇게 빠르게 해결이 될 줄은 몰랐다. 기적적인 일”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새 사장 선임 절차를 밟고 있는 MBC에는 그 어느 때보다 ‘적폐청산’과 ‘재건’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구성원에게 신망을 받는 인사가 사장으로 와야 개혁이 가능하다는 게 공통된 요구다. 변 앵커 또한 “신임 사장은 구성원들의 뜻과 의지를 모아 적폐청산을 해야 한다”며 “처해진 입장마다 온도차가 있어서 약간의 진통도 예상되지만, 이런 일이 거듭되지 않도록 재건 작업을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신뢰를 잃는 건 한 순간이지만 회복은 더디고 지난한 과정이 될 거에요. 이번 사장 임기 내에 모두 재건될 거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무너진 시청자의 신뢰를 얻어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는 “앞으로 경영진은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 맞서 MBC의 경쟁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그들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에 맞서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는 데 방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