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톱뉴스

[글로벌 리포트 | 일본]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

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는 태평양 전쟁의 A급 전범들이 안치되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과거의 침략 전쟁을 기획하고 주도했던 도조 히데키 전 총리나 조선 총독을 지낸 고이소 구니아키, 만주사변 주모자 이타가키 세이시로, 난징 대학살의 주범 히로타 고키 등이 합사되어 있다.


한국과 중국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일본 정치인들을 비난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한국인들의 눈에는 일본 정치인들이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것은 군국주의를 부정하지 않고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이런 야스쿠니 신사의 본당 오른쪽 뒤편에 스모 경기장이 설치되어 있다. 신사에 웬 스모 경기장이냐고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겉치레로 꾸며진 것은 아니다. 신년과 봄철의 두 번에 걸쳐 실제로 스모 시합이 치러진다고 한다. 스모는 신사를 방문하는 참배객들에게 오락의 일부로 제공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스모 자체가 신불에게 헌납되는 무형의 제물의 일부라고 한다. 스모는 주요 제례 때 치러지고 이를 ‘호우노(봉납) 스모’라고 부르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고대 스모는 격투기에 가까운 방식으로 치러졌다고 한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 고서기는 스모를 발차기를 위주로 한 격렬한 격투기로 기록하고 있다. 발차기로 상대방에게 일격을 가하고 쓰러진 상대방의 갈비뼈를 부러뜨려 목숨을 빼앗는 것으로 시합이 끝난다. 승리의 기쁨도 상대방을 배려해서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절도를 요구하고, 시합을 치르기까지의 의식을 중시하는 오늘날의 스모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특히 상대방에게 물리적인 피해를 주는 발차기는 사라졌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고대 격투기의 전통은 손바닥으로 상대방의 얼굴과 머리를 때리는 하리데(張り手)이다. 손바닥의 아랫부분을 사용하기 때문에 때린다는 의미보다는 가격하는 것에 가깝다.


연일 요코즈나 하루마후지의 주먹이 일본의 TV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요코즈나는 스모에서 가장 높은 등급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천하장사에 해당한다. 주간 신쵸에 따르면 하루마후지는 술자리에서 다카노이와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리모컨을 집어 던졌다고 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하루마후지가 다카노이와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내리친 ‘맥주병 폭행’이라고 보도해 파문이 더욱 커지고 있다.


NHK를 비롯해 주요 언론들은 연일 하루마후지의 폭행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민영방송사들도 이에 뒤질세라 톱뉴스로 관련뉴스를 내보내고 있다. 언론들의 취재경쟁은 술자리에 참석한 스모 선수들은 물론이고 관련자들에 대한 취재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술자리 참석자들의 증언 내용이 다르고 피해자인 다카노이와는 10월 말 하루마후지를 폭행혐의로 경찰에 신고한 이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12일에는 뇌진탕, 두개골 골절 등으로 인한 전치 2주 진단서를 일본 스모협회에 제출하고 규슈대회 출전을 포기했다. 다카노이와의 스승인 다카노하나는 스모협의의 조사를 신뢰할 수 없다며 조사를 거부했다. 하루마후지도 14일 반성한다는 의미에서 대회를 중도에 포기했다.


주요 전국지들은 사설을 통해서 하루마후지의 품격을 비판하고 스모협회의 조속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지방지 사설에도 하루마후지 폭행 품격이라는 단어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일본 스모계는 2006년부터 이후 6건의 폭행 사건이 발생했고 2010년에는 몽골출신 요코즈나 아사쇼류가 술에 취해 지인을 폭행했다는 책임을 지고 은퇴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의 과잉보도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17일에는 아베 수상의 국회 소신표명과 각 당 대표의 질의가 이어졌고, 20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테러국가로 재지정한다고 발표해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졌고, 23일에는 모리토모 학교 국유지 비용계산이 엉망이었다는 감사원 보고가 있었고, 27일은 300인 이상이 사망한 이집트 테러가 발생했다.


주요 쟁점들을 뒷전으로 하는 일련의 보도는 방송 뉴스의 주간지화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사례를 통해서 일본인들의 마음에 “이게 언론인가”라는 불신을 심어주는 것은 아닐까라고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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