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쓰다 보면 취재한 걸 다 담지 못할 때가 많다. 30년 가까이 현장을 누벼온 김두수 경상일보 기자도 그랬다. 그의 취재수첩엔 빛을 보지 못한 이야기가 쌓이고 또 쌓였다. 아쉬움만 커지던 어느 날 번뜩 생각이 났다. ‘시나리오!’
그길로 김 기자는 방송작가협회 교육원을 찾았다. 수강생 대부분은 20~30대 여성이었다. 50대 남성은 그뿐이었지만 6개월간 꿋꿋이 드라마과정 연수반 수업을 들었다. 시나리오작가협회 연구반, 영화촬영아카데미까지 수료한 그는 5년 전부터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시나리오의 뼈대는 그가 지금껏 취재하며 보고 들은 사실이다. 취재 뒷이야기, 킬된 기사를 늦게라도 밝히고 싶단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온 터였다. 1990년대 초반 입사 5년차 때 겪었던 사건이 계기였다. 당시 한 지역지에서 근무하던 그는 국회의원 관련 공작사건을 취재해 기사를 썼지만, 이 기사는 지면에 실리지 못했다. 외압을 받은 신문사 사주가 기사를 막았기 때문이다.
“기사가 조판까지 된 상황이었습니다.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해서 판을 복사해 취재원에게 보여줬어요. 그런데 그게 서울 중앙지 기자한테 전해진 겁니다. 결국 거기서 보도됐고 기자상까지 받았어요. 솔직히 많이 아쉬웠죠.”
이런 경험과 20년 국회 출입 경력을 살려 정치와 언론, 권력관계를 신랄하게 그리는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현재 영화제작사와 계약을 맺고 영화제작을 추진 중이다. 그는 1991년 남한강에 빠진 소년 3명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의사자 양필석씨 이야기, 2006년 전북대 수의대생 실종사건 등도 또 다른 시나리오에 담았다. 지난 5년간 주말마다 틈틈이 쓴 결과물이다.
김 기자의 시나리오는 모두 실제 일어난 사건이 배경이다. 그만큼 꼼꼼하게 취재했다. 그는 “수의대생이 실종됐던 새벽 시간 전북대 앞을 20번 넘게 찾아가 취재했고 가족들을 만나기도 했다”며 “기사, 시나리오라는 장르만 다를 뿐 기자와 작가가 하는 일은 똑같다”고 말했다.
그가 기자들에게 시나리오 쓰기를 적극적으로 권하는 이유다. 여러 분야를 취재하며 쌓은 통찰력·분석력, 다양한 사람과의 에피소드가 생동감 있는 캐릭터와 줄거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시나리오 품질만이 아니다. 기자생활에도 이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졌다는 걸 가장 큰 수확으로 꼽았다.
“시나리오를 쓴 후부터 한 사건, 한 사람을 더 유심히 관찰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점은 어떨까 저런 면은 어떻게 봐야 할까 계속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칼럼을 예전보다 잘 쓰게 된 것 같아요. 팩트와 기자의 의견을 적절하게 제시해야 할 때 짜임새 있는 스토리라인을 구성하게 된달까요.”
특히 젊은 기자들의 도전을 바랐다.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기자일에서 무료함을 느낄 때, 시나리오가 그 헛헛함을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기사 실력도 키울 수 있고.
“젊었을 때 시작했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50대라서 영화의 주소비층인 20~30대의 표현방식과는 거리가 있거든요. 카페에서 그들의 분위기를 읽거나 교육원 후배들과 작품을 돌려 읽으며 첨삭해요. 젊은 기자들과 같이 하면 서로 큰 도움이 될 텐데. 저 말고 시나리오 쓰는 기자가 또 있지 않을까요? 함께 합시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