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언론에 대해 갖는 불신은 일단 지난 10년간 정권의 언론장악에 기인한다. 정권 홍보용 언론으로 길들여진 언론은 세월호 참사 당시 전원 구조 오보를 비롯해 각종 주요 사건 사고에서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데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기레기’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게 됐다.
하지만 그게 전부만은 아니다. SNS와 팟캐스트 등으로 대변되어지는 새로운 정보 생산 및 유통 구조가 기성 언론을 상당부분 대체해 버렸다. 이는 촛불혁명을 스스로 이끈 시민들의 새로운 눈과 귀가 되었고, 급기야는 기성 언론이 그동안 누려왔던 선도적, 독점적 지위를 허용하지 않게 만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언론이 노 전 대통령에게 보였던 적대적 태도가 언론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다수의 국민들에게 존재한다. 이 실망감은 단순히 감정적 문제라기보다는 기성 언론을 진보와 보수로 구분해서 보던 국민들에게 진보 보수 상관없이 엘리트 집단으로서의 공통점이 많은 게 아니냐는 의심을 부여했다.
이렇게 보면 국민들의 언론에 대한 불신이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이나 정권에 대한 견제의 회복만으로 풀 수 있는 실타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기성 언론이 갖는 감수성은 여전히 무딘 편이다. 얼마 전 중국에서 발생했던 기자 폭행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싸늘한 반응이나, 그 이전 진보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 등에 대해 기성 언론은 특정 정치인의 팬덤이 보이는 과민반응 정도로 보는 뉘앙스를 비쳤고, 이것이 오히려 언론에 대한 비난과 불신을 더욱 키우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권을 감시하는 언론’의 시대에서 (정권을 감시하는) ‘국민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언론’의 시대로 바뀌었음을 이제는 인정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국민 위에 군림하던 정권이 국민의 눈높이로 내려온 것처럼, 정권과 같은 위치에서 정권을 감시하던 언론 역시 국민의 눈높이로 내려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이런 변화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중반부터 시작된 국민들의 인식 변화는 계몽주의-그 주체가 정부든 언론이든 지식인이든 상관없이-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사고하고 생각하고 참여하는 방향으로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국민들의 여러 자발적 움직임이 있었는데 특히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가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당시 언론 역시 이를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라며 높이 평가했지만, 한편으로는 광우병 보도를 했던 PD수첩의 영향력에 좀 더 방점을 찍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후 PD수첩같은 영향력이 있는 기성 언론 상당수가 정권에 의해 장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자발적 비판과 참여가 움츠러들기는커녕 결과적으로 대통령 탄핵까지 이끌어낸 걸 보면 그 당시에도 무게중심이 언론의 ‘영향력’보다 시민의 ‘자발성’ 쪽으로 이미 더 쏠려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에서 보면, 이제 새로운 시대에 요구되어지는 언론은 권력의 심장부를 노리는 검객의 이미지 보다는, 국민들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는 물론 그 맥락까지를 제공해주는 상담사의 이미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언론인들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낯설거나 간지러운(?) 모습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민의식이 향상되고 모든 권력에 대한 수평적 눈높이를 원하는 것에 언론도 예외일 수는 없음을 언론인들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2018년 새해에는 새로운 관계 정립 속에서 언론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