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의 '독자 퍼스트' 전략

[글로벌 리포트 | 미국] 국기연 세계일보 워싱턴 특파원

국기연 세계일보 워싱턴 특파원 전 세계적인 신문 산업의 위기 속에서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새로운 생존 전략을 선보였다. 그것은 전혀 새로울 게 없는 ‘독자 퍼스트’ 전략이다. 뉴욕타임스 등 세계 주요 신문은 디지털 시대를 맞아 그동안 ‘디지털 퍼스트’, ‘모바일 퍼스트’, ‘영상(비디오) 퍼스트’ 등 다양한 전략을 시도했다.


뉴욕타임스가 이런 전략을 모두 내팽개친 것은 아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역시 ‘독자 퍼스트’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미국의 시사 매체 ‘애틀란틱’ 최신호가 보도했다. 양질의 기사로 독자를 사로잡는 게 최고의 세일즈 전략이고, 이것은 디지털 혁명 속에서도 불변의 진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이 매체가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뉴욕타임스가 언론의 기본으로 되돌아가도록 하는 데 촉매제 역할을 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첫사랑이다. 뉴욕의 변방에 머물다가 부동산 재벌로 성공한 트럼프는 뉴욕의 주류 사회를 대표하는 뉴욕타임스의 인정을 받으려고 평생 구애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말끝마다 ‘망해가는(failing)’ 뉴욕타임스라고 언급하면서도 지난해 연말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뉴욕타임스 기자에게만 단독 인터뷰 기회를 주었다.


문제는 뉴욕타임스 등 언론사의 생명줄을 쥔 광고주가 트럼프 관련 기사 옆에 자사 광고가 게재되는 것을 싫어한다는 점이다. 트럼프 시대에 미국 사회가 보수와 진보로 두 동강이 난 상황에서 기업은 미국 구매자의 절반을 잃을지 모른다는 우려로 탈정치, 초정치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애틀란틱은 미국의 일부 광고주가 정치면에 자사 광고를 게재하지 말라고 신문사에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게다가 거대 광고주들이 ‘친 트럼프’와 ‘반 트럼프’ 노선을 노골화하는 보수·진보 언론에 광고를 내는 것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는 트럼프 시대에 뉴욕타임스 등 신문 지면 광고 수입이 격감하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가 트럼프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내면 기사 클릭 수가 급증하는 등 독자들이 열띤 반응을 보인다. 실제로 뉴욕타임스의 디지털뉴스 유료 구독자가 지난해 1월부터 9월 사이에 그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44%가 증가했고, 그 수입이 7500만 달러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3분기 디지털판 유료 구독자가 350만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뉴욕타임스에 디지털 유료 구독자 급증과 광고 감소라는 축복과 재앙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21세기 디지털 혁명 시대에 뉴욕타임스는 미국에서 신문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1800년대 초기 상황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그 당시에 신문은 광고가 아니라 1부에 6센트를 받는 구독료에 의존한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지난 2000년에 뉴욕타임스의 구독료가 총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6%였으나 지난해 3분기에 종이신문과 디지털 기사 구독료가 차지한 비중이 64%로 뛰었다.


뉴욕타임스는 이제 늘어나는 독자에 따른 구독료 수입 증가에 만족하지 않고, 이들 독자를 또 다른 수입원으로 전환하기 위한 전략 마련에 몰두하고 있다. 세바스천 도미크 뉴욕타임스 광고국장은 “신문사 편집국이 전인미답의 수익 소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디지데이 닷컴(digiday.com)에 “광고를 위한 뉴스를 만들자는 게 아니라 뉴스와 수익을 연결하는 전혀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 출발점은 뉴욕타임스 뉴스를 ‘소비자 브랜드(consumer brand)’로 만드는 일이 될 것이라고 도미크 국장이 밝혔다.


뉴욕타임스의 ‘독자 퍼스트’ 전략이 한국 신문에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뉴욕타임스는 영어 신문이기에 전 세계의 잠재적인 독자를 상대로 디지털 판 마케팅 전략을 동원할 수 있으나 한국 신문은 한글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뉴욕타임스는 또한 세계적인 브랜드로 이미 자리 잡았다. 그러나 신문산업의 존폐 위기 속에서 뉴욕타임스의 성공 스토리는 한국의 신문사가 ‘독자 퍼스트’라는 언론의 기본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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