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합의·남북회담 뉴스가치

[글로벌 리포트 | 일본]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부교수

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부교수 지난 9일 한국에서는 두 가지 큰 뉴스가 있었다. 먼저 한국 외교부는 2015년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 사이에 맺어진 위안부 합의 처리방향을 발표했다. 일본에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합의과정에서 중대한 흠결이 있었다는 점을 밝히고 일본의 노력을 요구한 것이다. 같은 날 판문점에서는 남북 고위급 회담이 개최돼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군사당국회담 개최, 남북대화와 교류협력 등이 합의됐다.


위의 두 가지 뉴스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경중을 가릴 수 없는 주요 뉴스다. 일본 언론들은 어느 뉴스를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을까. 위안부 합의는 한일관계를 좌우하는 중요 현안 중의 하나라는 것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일본 정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국회 동의를 거치지 않았지만 각의 결정을 통해서 국가 예산에서 10억엔을 거출했다. 지금까지의 한일 관계를 생각하면 이례적인 결정이다.


남북 고위급 회담 역시 중요한 뉴스다. 북핵과 미사일은 일본에 중대한 안보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수상은 외국을 방문하거나 예방을 받을 때마다 대북 압박과 제재의 필요성과 동참을 호소하는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아베 수상은 지난해 9월 유엔에서 실시한 연설에서 90% 이상을 북한 문제에 할애했다. 아베 수상과 자민당은 북한 위기를 강조하는 일본판 북풍몰이로 지난해 10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기도 했다. 북한을 비난하면서도 실상은 북한위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10일자 일본 신문들은 두 가지 뉴스의 가치를 어떻게 판단했을까. 전국지들의 1면은 위안부 문제와 남북 고위급 회담기사로 채워졌다. 이 중에서 남북 고위급 회담을 1면 톱으로 다룬 곳은 마이니치신문 한 곳 뿐이었다.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 산케이신문, 도쿄신문 등은 위안부 문제를 1면 톱으로 다뤘다. 남북 고위급 회담은 1면 사이드로 처리했다. 마이니치신문은 다음날자 신문에 문재인 대통령 신년사를 소개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1면 톱으로 올렸다. 신년사를 1면 톱으로 소개한 곳은 마이니치뿐이다. 같은 날 산케이신문은 아베 수상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했다는 내용을 1면 톱으로 다뤘다. 11일자 신문까지 포함하면 위안부 문제를 1면 톱으로 다루지 않은 전국지들은 없는 셈이다.


요코하마를 포함한 가나가와현을 중심으로 발행하고 있는 가나가와신문은 남북고위급 회담을 1면 톱으로 처리하고 위안부 문제를 사이드로 처리했다. 가나가와 신문은 ‘2년만에 남북회담, 북한 올림픽 참가를 표명, 긴장완화를 위한 군사회담 협의도’라고 제목을 뽑았다. 전국지에 비해 지방지가 뉴스가치 판단이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남북고위급 회담 기사나 위안부 기사의 바이라인을 살펴보면 ‘서울 교도’로 되어 있다. 교도통신이 제공하는 서울발 기사를 전제한 것이다.


일본의 신문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해 보니 전국지나 광역지역 신문사는 위안부 문제를, 기타 지방지들은 남북회담을 주요하게 다루는 경향을 보였다. 지역지들이 주요 전국지와 다른 지면을 제작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교도통신이 주요 뉴스를 제공할 때 뉴스가치를 판단하기 쉽게 뉴스가치도 같이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면 ‘1면 톱급 뉴스’, ‘1면 사이드급 뉴스’라는 식이다. 전국뉴스나 해외뉴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지방지로서는 교도통신의 뉴스가치 제공은 지면을 구성하기 쉽게 하는 좋은 힌트가 되는 것이다.


교도통신은 기사뿐만 아니라 사설도 제공하고 있다. 10일자 교도통신이 제공한 사설은 ‘위안부 문제 합의의 무게를 가볍게 보지마라’는 제목이다. 정부 간 (한일 위안부) 합의를 한국은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지적하고 있다. 위안부 합의 대책에 대한 일본 미디어의 반응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특히 방송이 그렇다. 낮시간대의 정보 프로그램의 코멘테이터들은 냉소적이다. 남북 고위급 회담으로 국제무대 전면에 나섰다는 고양감에 한국이 들떠있다는 서울발 리포터도 있다. 반면에 남북 고위급 회담을 사설로 다룬 신문은 한 곳 뿐이다. 미사일 경보를 발령하고 전철을 멈춰세운 지난해의 소동들은 무엇이었나. 비판적인 저널리즘이 사라진 일본 언론의 실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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