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 '무현금 사회'

[글로벌 리포트 | 중국]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국빈 방중 때 서민 식당에서 요기를 하고 모바일로 결제했다. 바쁜 출근 시간에 쫓긴 직장인들이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때우는, 한국식으로 치면 허름한 분식점쯤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그러잖아도 홀대 시비에 빠져 있던 국빈이 굳이 그런 곳에서 식사하는 게 적절한 선택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자 청와대 참모들은 “13억 중국 서민과 함께 식사를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청와대 담당자 누군가가 회심의 작품으로 준비했을 문 대통령의 서민 식사는 안타깝게도 중국 TV 화면을 타지 못하고 SNS나 소수의 인터넷 매체에 스틸 사진 몇 장이 게재되는 정도에 그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정상 회담 등 공식 일정 위주로만 보도하라는 지침이 내려갔었다고 한다.


필자가 더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혼밥’이냐 ‘13억과의 식사’냐의 논란에 묻혀 대통령의 모바일 결제 체험이 국내에서도 부각되지 못한 사실이다. 방중을 마치고 돌아간 뒤 모바일 결제로 대표되는 핀테크 혁신에 대한 청와대 내부의 토론이 있었다거나 관계 부처에 검토를 지시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대통령 지지자들이 열심히 띄우고 퍼나른 인터넷 게시물에서도 그 날 식탁위에 오른 음식 메뉴나 가격이 화제가 됐을 뿐, 모바일 결제에 대한 얘기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중국은 지금 ‘무현금 사회’의 실현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나라다. 한국인에게 잘 믿기지 않겠지만 중국 대도시 주민, 특히 젊은 층들은 일상 생활에서 현금을 꺼내는 일이 매우 드물다. 모바일 결제용 앱을 꺼내 상점 주인 등 돈을 받는 측의 QR코드만 스캔하면 그걸로 결제는 끝이다. 따로 돈을 충전해 둘 수도 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 은행 구좌나 신용카드와 연결시켜두면 자동으로 돈이 빠져 나가기 때문이다.


얼마 전 점심 시간에 서점에서 책을 산 뒤 현금을 건넸더니 점원은 “어머, 오늘 현금을 처음 받아요”라고 했다. 어물전에서 생선을 파는 할머니도, 인력거를 끌고 다니는 군고구마 행상도 모두 자신의 고유 QR코드를 갖고 다닌다. 필자가 직접 목격하진 못했지만 행인들에게 적선을 부탁하는 노숙자도 QR코드를 꺼내더라는 얘기를 여러 사람에게 들었다.


몇 달 전 주말, 아이와 함께 외출을 나갔다가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지갑을 집에 두고 온 사실을 발견했다. 당황해 하는 필자에게 중년의 택시 기사는 휴대폰에서 자신의 QR코드를 화면에 불러내 필자에게 보여주는 게 아닌가. 그제야 내 휴대폰에도 결제 앱이 설치돼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뒤 한나절 동안 이발과 식사, 재래시장 쇼핑 등 원래 계획대로의 일과를 끝낸 뒤 돌아오는 택시비까지 모두 현금 한 푼 없이 모바일 결제로 해결했다. 건망증 심한 필자는 지갑을 집에 두고 오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그 날 이후론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대신 휴대전화 충전 잔량을 수시로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중국의 모바일 결제 시장 규모는 세계 선두다. 시장조사기관들에 따르면 2016년 미국의 모바일 결제 규모는 1120억 달러였다. 반면 중국은 그보다 50배에 가까운 5조5000억 달러였다. 그 격차는 지금도 더 크게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미국처럼 신용카드가 일상화된 나라들에선 당장의 불편함이 없기에 모바일 결제의 보급이 느릴 수밖에 없다.

반면 중국은 신용카드 보급률이 낮아 모바일 결제가 빠른 속도로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다. 여기에다 정부가 규제의 장벽을 높이지 않고 용인한 것, 기존 금융권이 배척하지 않고 공생을 모색한 것 등이 성공의 요인으로 꼽힌다. 혁신 기술이나 서비스에 대한 수용이 그만큼 빠르다는 의미다.


모바일 결제를 선도한 알리바바 그룹의 마윈(馬雲) 회장은 “앞으로 5년 안에 전 중국을 현금 없는 사회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모바일 결제로 축적된 데이터는 마윈에게 무궁무진한 비즈니스 모델의 원천이다.


중국인은 세계 최초로 지폐를 발명하고 이미 7세기 당나라 때 종이로 약속어음을 만들어 대체 결제수단으로 사용했던 민족이다. 그런 민족이 지금 현금 없는 사회의 실현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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