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남미 지역은 정권 교체기를 맞는다. 주요국에서 대선이 잇달아 치러진다. 중남미 전체 인구의 3분의 2 이상인 4억2500만 명이 새 정부를 맞을 것이라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칠레에서는 이미 작년 12월 대선을 통해 중도좌파에서 중도우파로 정권이 넘어갔다. 기업인 출신의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 당선자는 칠레의 민주주의 회복 이후 20년간 계속된 중도좌파 집권 시대를 끝내고 2010~2014년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4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했다. 피녜라 당선자는 3월11일 취임해 4년간 칠레를 이끌게 된다.
칠레에 이어 올해는 콜롬비아, 파라과이, 베네수엘라, 멕시코, 브라질 등에서 차례로 대선이 시행된다. 이 가운데 특히 관심이 쏠리는 것은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대선이다.
베네수엘라의 최고 헌법기관인 제헌의회는 올해 말로 예정됐던 대선을 4월로 앞당겼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4월 중 치러질 조기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극심한 경제난과 식료품 부족, 살인적인 물가, 야당 탄압 등 부정적 이미지가 겹치면서 마두로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추락했다. 그러나 야당이 작년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서 결집력이 약해진 데다 주요 인사의 대선 출마가 봉쇄되면서 마두로 대통령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브라질에서는 좌파 노동자당의 룰라 전 대통령이 10월 대선에 출마할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다. 부패혐의로 기소된 룰라 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1심 재판에 이어 최근 2심 재판에서도 실형을 선고 받았다. 유죄 판결을 받으면 공직에 출마할 수 없으나 룰라 전 대통령은 연방고등법원과 연방대법원 상고를 시사하며 대선 출마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노동자당은 재판 결과와 관계없이 룰라 전 대통령을 대선 후보로 내세우겠다며 불복종운동까지 경고했다. 룰라 전 대통령은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좌파진영은 물론 노동계도 '룰라 지지'를 잇달아 선언하고 있어 그의 대선 출마가 좌절되면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베네수엘라와 브라질이 다소 예외적인 상황이지만, 올해 중남미 각국의 대선은 2000년대 들어 계속된 것처럼 좌-우파의 대결양상으로 흐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아르헨티나의 유명 정치학자인 페데리코 메르케 교수는 "앞으로의 대선에서 좌파나 우파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며, 변화와 개혁을 주도할 새로운 세력의 집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올해 대선에서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 엘리트를 심판하려는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표출될 것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는다.
한편, 대선을 치르는 것은 아니지만 쿠바에서는 카스트로 시대가 공식적으로 마감할 예정이다. 49년간 집권하다 지난 2008년 건강상 이유로 권좌에서 물러난 피델 카스트로에 이어 국가평의회 의장을 맡은 라울 카스트로는 두 번째 5년 임기가 끝나는 올해 2월 물러나겠다고 공언해왔다. 차기 국가평의회 의장에는 미겔 디아스-카넬) 수석부의장이 유력하다. 디아스-카넬은 개혁·개방에 긍정적이며 실용주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