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원인을 어디서 찾든 언론의 신뢰도가 떨어진 것은 현실이다. 정치적인 요인 때문이든 자본의 압박이 원인이든 지금의 언론은 대중의 신뢰를 잃었다. 민주주의 관점에서 보면 대중이 신뢰하지 않는 언론의 존재 이유는 없다. 언론이 언론으로서 구실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구독률이나 시청률 저하는 그 징표다. 물론 넷플릭스나 SNS와 같은 다양한 플랫폼의 증가도 한 요인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유난히 전체 구독률이나 기존 방송의 시청률이 더 빠르게 저하하고 있다. 신뢰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기레기’라는 표현을 단순한 대중의 구호에 불과하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신뢰도 저하는 위기의 본질이다.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첫 단추는 ‘사실’보도의 문제다. 언론이 전달하려는 것은 진실이지만 사실에 기반 하지 않고 진실에 이를 수는 없다. 의도성을 가지고 허위 보도한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사실 확인을 위해 충분한 과정과 노력을 거치지 않은 보도들이 언론 전반의 신뢰를 저하시킨다. 예를 들어 CNN은 논란이 있는 기사의 경우 일상적으로 사실 확인 절차를 수행하는 편집간부와 법률전문가 그리고 S&P(News Standards and Practices)라 칭하는 심의기구의 사전 검증 절차를 거쳐야 기사를 내보낸다. 물론 CNN만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비슷한 검증 장치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작동 여부다. CNN은 전술한 3자가 100% 동의하지 않으면 기사를 내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긴급하고 중요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리 언론에서 이런 기제가 작동할까? 세월호 보도 참사는 그렇지 않음을 입증했다.
사실임을 확인해도 그것이 곧 진실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사례가 있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골뱅이 통조림 사건도 진실을 확인하기 위한 언론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다. 골뱅이 통조림에서 포르말린이 검출됐지만, 그것이 통조림 회사가 포르말린을 사용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포르말린 검출을 입증했다는 ‘사실’만으로 포르말린 사용이라는 ‘진실’이 되어 버렸다. 이후 문화일보 기자의 확인 노력으로 진실이 밝혀졌지만, 오보의 피해가 원상회복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쓰레기 단무지 사건처럼 비슷한 사례는 반복됐다. 사회구조적 사안부터 개인의 일상까지 우리 언론은 사실 검증 이후 그것의 ‘진실’은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얼마나 더 노력하는지, 그리고 진실을 확인할 때까지 보도를 자제하거나 표현을 절제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최근 미국의 ‘힙합 대통령’이라는 래퍼 제이지(Jay-Z)와 트럼프 사이의 논쟁 과정에서,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이 된 이후 역대 최저 흑인실업률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의 두 번째 집권기에 13.7%로 시작한 흑인실업률은 마지막에 7.8%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무엇이 진실일까? 진실은 단순하지 않다. 진실은 기자들의 심층 취재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사실을 진실로 포장하거나 사실이라는 명분 뒤에서 진실에 이르는 길을 쉽게 포기하고 있지는 않을까?
지금 99%의 기사는 기명이다. 기사의 신뢰도, 거기에 기반을 둔 언론의 신뢰도 회복은 결국 기자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