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의 법관 사찰

[스페셜리스트 | 법조] 백인성 머니투데이 기자

백인성 머니투데이 기자 | 2018.02.07 14:57:34

'법관 사찰'은 사실이었다. 법원행정처가 행정처 심의관 출신 '거점 법관'들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법원 내부게시판, 포털사이트의 익명 카페 등을 총동원해 판사들을 광범위하게 사찰한 문건이 발견됐다. 행정처에 비판적인 법관들은 핵심그룹과 주변그룹으로 분류됐다. 2015년 사법행정위원회를 만들면서 그 위원 후보로 추천할 판사들의 성향·평판을 뒷조사해 빨강·파랑·검정으로 분류한 문건 리스트도 나왔다.

 

 법원 내 특정 연구회 소속 판사들의 학술행사를 막거나 축소하고, 심지어 특정 후보 당선을 위해 선거 전략과 지원단을 구성하는 식으로 판사들의 자율적인 선거에 개입하려 한 문건도 발견됐다. 법원행정처가 '사법부 내 국정원' 역할을 수행한 셈이다. 특히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통령 선거 개입 판결 전후 행정처가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긴밀하게 교감을 나눈 사실도 드러났다.

 

 사실관계가 모두 드러난 것도 아니다. 법원행정처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PC는 끝까지 건네주지 않았다. 제출된 다른 PC들에도 삭제되거나 사용자들이 암호를 걸어 조사하지 못한 파일이 760개에 이른다. 이 파일들은 '성향' '동향' 등의 주요 단어로 검색했을 때 추출된 파일들이어서 안에 중요한 내용이 있을 것으로 추정됐지만 행정처의 비협조로 확인이 불가능했다. 법원행정처가 대립각을 세운 판사들의 동향조사를 넘어 불이익을 주는 이른바 '대응방안'이 실행됐는지는 조사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법원은 사회의 갈등을 마지막으로 해결하는 장소다. 판결의 염결성이야말로 사법부가 지켜야 할 최고최후의 가치다. 판사들이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할 것이라는, 헌법이 부여한 신뢰에 금이 가는 순간 법치는 무너진다. 국민이 믿지 않는 법원은 기간만료된 은행 공인인증서만큼이나 쓸모가 없다. 대법관들이 외부의 영향을 받은 적이 없다고 입을 모은들 해결될 일이 아니다.
 

 누란의 위기는 뼈를 깎는 자성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검찰 조사를 거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다며 법원행정처장을 교체했지만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엔 한참 부족하다. 추가 조사는 사실관계의 명명백백한 확인에 그칠 것이 아니라 판사에 대해 광범위하고 집요하게 동향을 파악하고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그러한 행위가 허용된 원인이 무엇인지 결론내야 한다고 그 시스템 자체를 혁파해야 한다.
 

 아울러 추가 조사의 주체에는 공신력있는 외부 위원이 참여해야 한다. 조사 대상에서 빠진 파일들은 검찰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 비밀번호를 건 법원 심의관들과 판사들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증거인멸 및 업무방해죄 성립 등을 판단해 수사의뢰해야 한다. 행정처의 법원 사찰에 참여한 관련자들이 사표부터 던지는 것을 대법원 예규를 근거로 차단하고, 조사가 끝날 경우 가담 정도에 따라 명명백백하게 의법처리해야 한다. 법원이 다시 서기 위해 스스로 가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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