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후 다시 시작된' YTN

[언론 다시보기]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최남수 사장 퇴진을 주장하며 YTN 노조가 파업을 한지 벌써 20여일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MBC와 KBS가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을 한 기간에 비하면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YTN이 지난 9년여 동안 공정방송을 주장하다 해직된 6명의 언론인들과 함께 고통의 시간을 견뎌냈음을 떠올려 보면 20여일이란 숫자 앞엔 ‘9년 후 다시 시작된’이란 수식어가 있는 듯 해 아프고 서글프다.

 

물론 최남수 사장은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없이 임명된 자신을 노조와 구성원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 것에 대해 억울한 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2008년 임명되었던 구본홍 사장 역시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어 YTN 구성원들이 그토록 반발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명박 대선 후보 캠프의 ‘언론 특보’였다는 게 퇴진 요구의 이유였고 이는 ‘절차’가 아닌 ‘내용’의 문제였다.

 

다행히 최남수 사장은 구본홍 사장처럼 겉으로 쉽게 드러나는 내용의 문제를 지니고 있진 않았다. 바로 그런 점이 YTN 노조가 최 사장과 공정방송 회복을 위한 합의를 했던 이유다.  하지만 사장 선임 이후 보도국장 내정자에 대한 합의파기를 비롯하여 과거 해직 후 복직된 언론인들에 대한 적개심 표출 등 합의 당시에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들이 발견됐다. 당연히 이는 최남수 사장이 확보되었다고 주장하는 ‘절차적 정당성’이 과연 ‘정당한 절차’로 작동했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으로 이어진다.

 

공영언론사 혹은 공영성을 지닌 언론사의 사장을 선임하는 절차가 정당하게 작동했다고 하면 가장 중요한 검증 항목은 당연히 ‘언론관’과 ‘언론인으로서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사란 특수성 이전에 공공기관장으로서 통과해야 하는 기본적인 검증절차는 당연히 통과했다는 전제를 하고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최남수 사장에 대한 사후적 문제제기의 대다수가 그가 언론인으로서 적당한 언론관과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것들이다.  

 

이는 바꿔 말해 YTN 사장 선임 절차가 이러한 부분을 사전에 검증해내지 못했다는 걸 의미한다.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검증절차가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번 YTN 사장 선임만 부실 검증이 진행됐던 건 아니다. KBS와 MBC 사장의 경우 역시 이러한 부분에 대한 검증은 사장을 선임하는 공식 주체들에 의해서보다는 노동조합이나 언론 관련 시민단체, 다른 언론 등의 문제제기와 폭로를 통해 진행됐던 게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매번 공영언론사 사장 선임 철이 되면 노동조합은 울분을 터뜨리고 정치권은 유불리를 따지며 공영언론 사장을 정치 프레임 안에 가두는 일이 반복되어 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검증을 못 하는 절차라면 그것을 잘 거쳤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당연히 부족하다. 그런 부족한 절차에 의해 선임된 것을 자신의 정당성으로 주장하는 것 역시 스스로의 부족한 정당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최남수 YTN 사장이 자신의 절차적 정당성을 주장하며 노조의 퇴진 요구를 거부하는 것이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다.

 

사실 이런 문제는 대단히 오래된 것이다. 정치권의 권력 지형과 이해관계가 공영 언론사의 사장 선임에 그대로 반영되는 구조가 원흉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구조 속에 내용적 검증을 요구하는 언론인들은 해직과 징계 속에서 살아 왔다. 부디 이번만큼은 이들의 희생이 당장의 상황 개선에 그치지 않고 국민들이 직접 공영언론의 사장을 뽑는 구조 변화로 결실을 맺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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