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가 #MeToo를 대하는 모습

[글로벌 리포트 | 핀란드]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평창 동계올림픽 소식으로 모처럼 스포츠 뉴스가 넘친 겨울이었다. 환희와 감동 속에서 발굴한 소식을 전하는 동안 언론도 꽤 즐거웠으리라 생각한다. 취재 현장이 즐겁고 활기찬 경우는 정말 손에 꼽는 일이니, 다시 일상적인 소재를 마주할 부담도 느낄 수 있겠다. 하지만 적폐가 달리 적폐겠나. 할 일은 많다. 가장 시급한 문제 한 가지를 꼽아본다. 지난 몇 주 올림픽 뉴스 아래 힘겹게 연대를 이어온 성폭력 피해 증언 #MeToo.

 

핀란드에서도 최근 #MeToo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편인 나라지만, 성폭력 양상은 비슷했다. 피해 사례는 주로 직장 및 조직에서 젊은 여성, 특히 폐쇄적인 구조 속에서 직위가 낮거나 불리한 위치에 있는 구성원이었다.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사례 가운데 하나는 고등학교 학생들의 성추행 피해 탄원이다. 핀란드 서부 해안 도시 가운데 하나인 바아싸(Vaasa)에 위치한 종합학교 학생들이 남자 교사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비판한 건 지난해 11월 말. 재학생과 졸업생 200여명은 탄원서를 통해 고등학교(upper secondary school) 과정, 심지어 초등학생 때도 겪은 성폭력 사례를 폭로했다. 부적절한 시선과 언행, 그리고 신체 접촉을 포함한 ‘원치 않는 유혹’이 있었다고 학생들은 공개했다. 구체적인 사례 서른 건이 탄원서에 담겼다.

 

이 학교의 특징은 핀란드 내에서 몇 안 되는 스웨덴어 사용 지역에 있다는 점이다. 스웨덴어를 쓰는 비율은 핀란드 전체 인구의 5%가량이다. 이른바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동네’라는 뜻의 스웨덴어 표현 ‘오리 연못’(앙크담멘, ankdammen)을 자조적으로 붙이기도 한다. 구성원 대부분이 인맥과 학맥으로 연결되어 있어 성폭력을 겪고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다. 공영방송 윌레(Yle)는 스웨덴계 핀란드인 여성이 시작한 캠페인 ‘둑이 무너진다’(담멘브리스터, #dammenbrister)를 소개했다. 웹사이트를 통해 6000여명이 성폭력 경험담을 털어놓고 있다. 주변 시선이 두려워 평생 꺼내 놓지 못했다는 고백이 적지 않다.

 

영화계에서도 증언이 나왔다. 저명한 영화감독 라우리 뙤르회넨을 상대로 피해 여성 스무 명이 소송을 걸었다. 그는 과거 헬싱키 예술대(현재 알또 대학) 영화과 교수 재직 당시 입학시험에서 지원자에게 에로틱한 이야기를 해보라고 요구했다. 윌레 뉴스는 뙤르회넨의 지위와 영향력, 또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이름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유명 영화감독 하이디 린덴은 MTV에 출연해, 영화계에 만연한 고용 불안이 이 같은 성폭력이 지속된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정규직 일터가 대학교나 방송사뿐이라, 열에 일곱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문제를 쉬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었다. 린든 감독은 영화계에서만 구체적인 피해 사례 150건을 수집했다고 밝혔다.

 

다른 산업계에서도 #MeToo는 중요한 이슈다. 지역 공공기관 노동자 연합인 위뛰(Jyty, 공공·민간부문 고용자 연합)는 응답자 2400여명 가운데 38%가 성추행 경험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조사를 발표했다. 핀란드 국방부도 설문조사를 진행해 공개했다. 남녀를 통틀어 응답자 800명 가운데 17%가 적어도 한 차례 이상 성폭력 경험을 응답했다. 국방부측 인터뷰이의 발언이 인상적이다. “적절하거나 부적절한 행동을 정의하는 일을 통해 성폭력 문제 이해를 높이고, 구성원의 일상생활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성원간 성평등 수준이 일정한 편인 핀란드지만, 이렇듯 #MeToo를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증언이 있든 없든 피해가 발생하는 환경을 미리 짚어보자는 논의, 그간 문제를 덮고 있던 억압적인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핀란드 국회는 지난해 12월12일 성희롱과 성추행을 주제로 90분 동안 논의했다. 사회민주당(SDP) 뚜울라 하아따이넨(Tuula Haatainen)의 발언을 시작으로 각 정당 의원은 어린이 스포츠클럽, 장애인, 이민자 여성이 노출된 환경을 말했다. 여야 할 것 없이 #MeToo 운동을 정쟁으로 소모하지 않았다.

 

핀란드 언론은 여러 공간을 할애해 피해자 증언을 공개했다. 그만큼 성폭력은 일상적인 문제고, 보편적인 위험이라는 점을 이야기했다고 본다. 한국 언론 내부의 #MeToo는 어떤가. 일단 폐쇄적인 위계질서에 덮여 있던 피해 사례를 스스로 드러내는 일부터 해보면, 이 문제를 더 진지하게, 또 감수성 있게 다룰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혹시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준 일은 없는지 돌아보며, 모든 이들의 용기, #MeToo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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