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당 법정노동시간을 최장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오는 7월부터 의무적으로 노동시간을 준수해야 한다.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 높은 언론사 노동 환경의 대대적 손질이 불가피하다. 그동안 언론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근무는 고사하고, 연장근로와 휴일근로가 일상인 삶을 살아왔다. ‘저녁이 있는 삶’을 보도해왔지만, 정작 자신은 보호받지 못한 모순적인 상황에 내몰려왔다.
우리나라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길기로 유명하다. 2016년 기준 취업자의 연간 노동시간이 2069시간으로 멕시코 다음으로 길다. OECD 평균은 1763시간이다. 이런 열악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주당 노동시간 단축은 의미가 크다. 최장 노동에 볼모잡힌 언론인의 노동조건을 생각할 때 법안 통과는 더 각별하다. 장시간 언론노동자를 만든 가장 큰 요인은 암묵적 관행이다. 언론인이라는 이유로 뉴스가 터지면 휴일을 반납하고 밤낮없이 대처해야 했다. 대형 사건이 터지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취재하고 기사를 써왔다. 쉬고 싶다는 말은 입 밖에 꺼낼 수 없는 조건에 몰렸다. 정당한 휴식권 요구가 무책임한 태도로 비쳐지는 현실이 지배해왔다. 자발성으로 포장됐지만 거부할 수 없는 압박감에 짓눌렸다.
연장근로를 해도, 휴일근로를 해도 정당한 대가조차 받지 못했다. 연장근로는 무임금이 당연시됐고, 휴일근로는 1.5배 수당을 받도록 법에 정해졌지만 사문화됐다. 휴일수당을 정액제로 지급하는 꼼수를 써왔다. 노사 단체협약으로 교묘히 법망을 피해왔다. 법을 준수해야 할 언론사가 인건비를 줄일 목적으로 불합리한 방식을 타협해왔다.
오는 7월부터는 주당 52시간 넘게 노동을 시킬 수 없다. 현재의 노동조건을 개선하지 않으면 불법을 저지르게 된다. 변화가 필요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디지털 뉴스소비가 늘며 기자들은 과거보다 더 많은 기사들을 써야 하고, 휴일에도 출입처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챙겨야 한다. 신문을 내지 않는 날에도, 방송 리포트가 없는 날에도 기자들은 맘을 놓을 수 없다. 밤에는 취재원을 따로 만나 남들보다 한 발 앞서 기사를 발굴하기 위해 뛰어야 한다. 성실한 기자로서의 직무가 온전히 과로노동으로 몰리는 구조적 모순에 빠져 있다. 과로노동의 스트레스는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작용한다. 암이나 심근경색, 뇌출혈 등 질병으로 쓰러지는 동료들이 늘어날 때마다 ‘다음은 내가 아니길’ 바라며 오늘도 야근을 하고 있다.
언론사는 당장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태스크포스를 꾸려야 한다. 휴일을 포함해 주당 52시간을 넘기지 않으려면 인력충원이 불가피하다. 현재 인력으로 법을 준수하려면 제작시스템의 획기적 개선이 필요하다. 주5일 노동의 정착을 위해 신문의 토요판 같은 실험적 시도가 있어야 한다. 적절한 인력 배분을 통한 효율적 노동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럼에도 한순간에 노동조건이 바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관행이 뿌리 깊다. 단기,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단계적으로 제작 공정 개선을 해야 한다.
더 이상 노동자의 열정에 기대 불합리한 노동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언론인 또한 누군가의 자식이고, 아내이고, 남편이고, 엄마아빠다. 저녁이 있는 삶을 모두 꿈꾼다. 삶의 질이 나아지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과로노동 없는 삶, 늦었지만 언론도 시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