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무하는 세상…언론사는 주 70시간

근로시간 단축, 언론계 영향은 ① 아침·점심·저녁이 없는 삶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따라서 300인 이상 언론사는 오는 7월부터, 이번에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방송사는 내년 7월부터 법 적용을 받게 됐다. 근로시간 단축이 언론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3회에 걸쳐 짚어본다.


“오전 8시에서 8시30분 사이에 국회에 출근하고 약속이 있으면 저녁 6~7시 쯤 퇴근합니다.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평균 9시간 정도를 일하죠. 이렇게 주 5일을 근무하면 법정 근로시간이 지켜질 텐데 실상은 그렇지 못해요. 정치부 특성상 주 6일을 밥 먹듯이 하거든요. 주중에도 상임위원회, 본회의가 열리거나 인사청문회가 진행되는 경우엔 밤 10시에서 11시까지 남아 챙겨야 합니다. 일찍 퇴근한 날도 대체로 취재원과 술자리를 갖죠. 그게 없다 하더라도 TV뉴스나 정치인들 SNS, 만찬 회동 등을 취재해 저녁에도 기사를 쓰곤 합니다.”


정당을 출입하는 종합일간지 A기자는 지금의 업무구조상 절대 법정 근로시간을 지킬 수 없다고 말했다. 저녁마다 아무 이슈가 없고, 주말 근무를 하지 않는 주에 한해야 겨우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A기자는 “주당 52시간 근무를 언론사에 적용시키면 위반 사례가 어마어마하게 나올 것”이라며 “근무시간 축소를 위해선 시스템을 바꾸거나 언론사가 인력에 투자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제356회 국회(임시회) 제9차 본회의에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뉴시스)

지난달 28일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곳곳에서 ‘주 5일제 정착’ ‘인력 충원’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언론계에선 52시간 근무가 실현 가능한지를 놓고 노사 모두 당혹해하는 상황이다. 현행 기준인 주당 68시간을 넘기기 일쑤일 정도로 초과근무가 만연해 있는 상태여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한국의 언론인 2017’ 자료를 보면 기자들의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약 10시간 5분이다. 주당 평균 5.5~6일을 일한다는 가정 아래 주당 55시간에서 60여시간을 근무한다는 소리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방송사, 뉴스통신사의 근무시간은 심각하게 높다. 특히 종편/보도전문채널에 근무하는 기자들의 근무시간은 하루 평균 11시간 19분으로,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하는 비율이 55.5%였다.


종편 B기자는 “8시 넘어서부터 보고할 거리를 올려야 하기 때문에 오전 7시30분에는 근무를 시작해야 하고 리포트가 나가지 않을 때도 보통 오후 7시를 넘겨 퇴근한다”며 “일상적인 근무시간 외에도 새벽 4시30분까지 나와야 하는 조출이나 밤 9시 넘어 퇴근하는 내근 제도가 거의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돌아온다. 주당 52시간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석간신문, 인터넷매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석간신문에서 일하고 있는 C기자는 “매체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석간 기자들 출근 시간은 보통 오전 6~7시 정도”라며 “퇴근은 내근직을 제외하곤 대부분 오후 6시는 돼야 할 수 있다. 기본 12시간 근무가 일상”이라고 말했다. 인터넷매체에서 문화와 연예를 담당하는 D기자도 “매일 일정이 제각각이라 시간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출퇴근 시간이 의미 없을 정도로 새벽이나 밤에 기사가 올라가는 경우들이 잦다”며 “2월에 쉰 날이 이틀이다. 이 한 달 간 109개의 기사를 썼다”고 말했다.   


안에서 기사를 처리하는 내근직의 경우에도 52시간 근무는 “맞추기 어려운” 시간이다. 지상파 방송사 디지털부서 데스크였던 E기자는 “어떤 뉴스가 있는지 알아야 하니까 오전 7시쯤 출근해 기사들을 훑어보고 맥락을 파악했다”며 “하루 종일 회의와 데스킹으로 시간을 보내고 빠르면 오후 7시에 퇴근했던 것 같다. 거기다 한 달에 2~3번은 주말에 일했는데 그것도 최소한이어서 실제 근무시간은 더 많았다”고 말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한국의 언론인 2017’ 자료를 보면 기자들의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약 10시간 5분이다.

문제는 근로기준법상 ‘신문·방송·출판 사업의 기사 취재·편성·편집 업무’의 경우 재량근로 대상으로 지정돼 노사가 합의해 정한 시간을 근무시간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침 보고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나 퇴근 이후 취재원과의 술자리 등은 노사 합의에 포함되지 않으면 공식적인 근무시간이 되지 않았다.


종합일간지 F기자는 “퇴근하고 취재원과 만나는 시간은 근무하는 것이 아니”라며 “특히 카카오톡방이 24시간 굴러가고, 밤 9시에 선배에게 전화가 와서 기사 좀 처리해달라는 얘기를 들어도 이는 업무로 기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제지 G기자는 “근무시간 측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그동안 기자들의 근무시간을 일일이 계산하지 않고 노사 합의를 해왔다. 그래서 다들 공식적으론 현행법을 준수하는 근무를 하고 있다”며 “문제는 이제부터다. 과연 주당 52시간에 실제 기자들의 근무시간을 우겨넣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언론사 내부에서도 주당 52시간 근무를 어떻게 하면 제도화할 수 있을지 고심 중이다. 재량근로라 해도 향후 노사 합의로 정한 근무시간이 주당 최대 52시간을 넘겨선 안 되기 때문이다. 장영석 전국언론노동조합 노무사는 “법 취지에 맞게 인력 충원을 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며 “그게 아니라면 주 5일을 준수하거나 인력을 이원화하는 등 근무 시스템을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C기자도 “법률의 이행과 실행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주나 최고경영자의 의지”라며 “그 의지에 따라 주당 52시간 근무의 정착이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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