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의 일상은 대체로 먹거나 자는 일로 채워진다. 장롱 속이나 침대 아래 같은 어둡고 조용한 곳에서 잠이 들다 사료나 간식을 먹고 집에서 가장 편안한 곳을 물색해 ‘식빵 자세(앞발과 뒷발을 가슴팍과 배 아래로 집어넣어 네모 모양의 식빵처럼 앉아 있는 자세)’로 명상을 하는 하루. 걱정이나 시름이란 단어는 그의 일과에 없다. 사소하지만 즐거운 재미들이 있을 뿐이다.
그런 그가 어느 새인가부터 명예기자라는 직함을 달고 한겨레에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한겨레21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묘생 일기를 연재하다 최근 애니멀피플에서 ‘육아냥 다이어리’를 쓰며 마감의 ‘고통’을 알아가고 있다. 칼럼뿐만 아니라 이메일(manse@hani.co.kr)로 들어오는 보도자료로 기사도 쓰고 있다. 영락없는 고양이 기자다. 만세는 심지어 최근엔 칼럼을 모아 ‘나는 냥이로소이다’라는 책까지 냈다. 이 모든 것이 반려인 때문에 생긴 일이다.
만세의 반려인 신소윤 한겨레 기자는 육아휴직 중인 2014년 만세를 기자로 ‘데뷔’시켰다. 하루 종일 고요히 앉아 자신을 지켜보는 만세를 보며, 무언가 열심히 말하는 만세의 눈을 보며 그의 이야기를 인간의 말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신소윤 기자는 “고양이는 인간 세상을 한심하게 보는 투가 있다”며 “개처럼 선망하고 끼고 싶어 한다기보다 전혀 낄 생각이 없어 보이는 눈빛이다. 캐릭터가 확실했고 그런 만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는 냥이로소이다’에도 그래서 저자는 만세, 신 기자는 옮긴이일 뿐이다.
만세의 눈빛은 심드렁하지만 사실 만세는 같이 사는 개 ‘제리’에게 많은 것을 양보하는 착한 고양이다. 2011년 봄 신 기자의 집에 입양 온 만세는 한 해 일찍 온 형 제리보다 어느덧 덩치가 훨씬 커졌지만 밥 먹을 때나, 반려인의 손길을 받을 때나 제리에게 많은 걸 양보한다. 신 기자가 출산한 후엔 “자기가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의지하는 건지” ‘육아냥’이 되어 아이 곁에 가서 자고, 아이가 끌어안아도 가만히 참아준다.
사실 만세가 가장 많은 배려를 해주는 존재는 신 기자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시간인 늦은 밤을 침범해 일을 하는 반려인에게 그는 기꺼이 몸을 내준다. “식탁 의자에 앉아 원고를 쓰다 맞은편 의자에 다리를 걸치면 발바닥에 만세의 몸이 닿아요. 그 늦은 밤 유일하게 곁에 있는 존재죠. 책을 펴내기 위해 몇 달 동안 밤과 주말을 헐어 일을 했을 때도 만세가 매번 함께 했어요. 그 ‘고양이 시간’이 참 위안이 됐습니다. 저는 아이를 키우고 집이 멀어 장거리 출퇴근을 하다 보니 늘 쫓기면서 사는데 그에 비해 평온하고 멍 때리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전혀 생산적이지 않는 만세의 시간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어요.”
만세와 제리를 키우면서 동물에 대한 신 기자의 시각 역시 큰 변화를 겪었다. 펫샵에서 데려온 제리가 자주 경련을 일으키는 등 체질적으로 몸이 약한 모습을 보며 강아지공장의 폐해를 알게 됐고 많은 반성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반려동물을 함부로 키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사실 이 아이들을 끝으로 더 키우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그만큼 더 잘해주려 하는데도 제가 얻는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존재 자체에서 오는 편안함. 신 기자는 반려동물의 가장 큰 장점으로 존재의 편안함을 꼽았다. 특히 늘 시간에 쫓기고 바쁜 나날을 보내는 기자 반려인에게 반려동물은 심적으로 위안을 주는 숨은 조력자들이라고 말했다. “아마 반려동물을 키우는 기자들 모두 저만큼 위안을 얻지 않을까 생각해요. 반려동물은 밤에 옆을 지켜주는 재택야근 도우미들이니까요. 반려동물 키우는 기자들 모두, 그래서 다들 끝까지 잘 키웠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