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체계 변화 없이 주5일 급급…기자 인력 보강엔 침묵

[근로시간 단축, 언론계 영향은] ③-끝 / 언론사들 주 52시간 테스트해보지만

법정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비해 일부 언론사에서 대응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주5일제 강력 이행’과 ‘평일·주말판 편집국 이원화 운영’이란 두 축을 기본으로 ‘시뮬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다. 여러 매체가 고심하고 있지만 기존 ‘68시간 체제’의 업무체계·성과 조정, 관행 철폐 없이 법 준수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다수 언론사는 ‘걸면 걸리는’ 근로기준법 위반 사업장으로 계속 남을 가능성이 높다.


근로기준법 개정안 통과로 언론사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업무체계 개편, 기존 관행에 대한 과감한 개선 없이 기자 근로시간만 줄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향후 언론사가 내놓을 대안에 관심이 모인다. /Pixabay


중앙·동아일보는 ‘52시간’ 근로대응 시뮬레이션 중
“금요일엔 (기자들) 많이 쉬어요. 편집국장도 안 나오는데요.”(중앙일보 A기자)
‘주52시간 근무’ 실험 2주차를 맞은 중앙 편집국의 ‘금요일’은 이렇다. 토요일자 제작을 앞두고 취재와 마감 중이었을 예전과 비교하면 명백히 다른 풍경이다. 중앙선데이가 토요일자를 완전히 대체하면서 금요일 중앙 기자들의 최소 근무가 가능해졌다. 앞서 한 달 치 휴일근로계획을 미리 받아 날짜별 근로·휴무자가 배분됐다. 기자들로선 기존 ‘토요일’에 더해 ‘금요일’까지 주당 휴무가 하루 늘어난 셈이다. 디지털 전담 부서에선 24시간 대응을 이어간다. 다만 한 조당 7~8시간, 3교대 근무로 유지해 근로시간을 맞춘다. 중앙그룹 B관계자는 “지켜 보면서 미세조정을 하려 한다”며 “중앙 편집국과 교류가 많은 보도국을 비롯해 JTBC 전체도 오는 7월부터 52시간 근무로 맞춰간다는 게 회사 방침”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도 같은 시기 ‘주5일 근로’ 실험에 들어갔다. ‘금토’, ‘토일’로 나눠 주당 이틀을 쉬는 기자들이 꽤 있었지만 이젠 정치·사회부 데스크까지 여기 맞추는 분위기다. 부장과 선임 차장이 돌아가며 출근해 공백을 채우는 식이다. 동아에선 ‘콘텐츠기획본부’가 중앙선데이 역할을 한다. 중앙처럼 토요판 전부를 대체하진 않지만 상당 지면을 담당한다. 약 3~4년 전 만들어진 콘텐츠기획본부는 기존 주축인 고참 기자에 올해 인력이 보강되며 부서 성격과 역할이 명확해졌다.


출입처마다 일부 기자가 전담하던 방식도 바꿨다. 동아일보 C기자는 “여러 기자가 한 출입처를 동시 커버해 한 기자가 쉬어도 다른 기자가 기사를 쓸 수 있게 했다”며 “경제부, 산업1부, 산업2부의 경우 평소엔 별도로 운영되다가 휴무자가 많은 금요일엔 일부 데스크만 출근한 채 통합 운영된다”고 설명했다.


‘주5일 강제’, ‘편집국 이원화’는 해답인가.
중앙·동아의 시뮬레이션은 ‘주5일제 강력 이행’과 ‘평일·주말판 편집국 제작인력 이원화 운영’을 특징으로 한다. 평일 5일 근무만으론 얼추 52시간을 준수할 수 있으나 주말 근무 시 법을 어기게 되니 기존 ‘토요일’에 추가 휴무 하루를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법은 평일 5일 동안 52시간 근무(주말 16시간 별도)를 맞추면 됐는데, 바뀐 법은 주말을 포함 7일 동안 52시간을 허용한 데 따른 조치다.


하지만 다수 기자의 휴무를 늘린 채 편집국을 이원 운영하기 위해선 일정 규모 이상이 전제돼야 한다. 2016년 말 기준 중앙과 동아의 기자 수는 각각 260명, 310명 대였다. 빡빡하게 돌아가는 신문사 현실에서 이보다 기자 수가 적을 경우 시도 자체가 가능치 않다. 당시 조선일보가 280명, 한겨레신문이 270명, 경향신문이 210명 가량이었다.


더욱이 중앙·동아만 해도 운영은 결코 여유롭지 않다. 현재 중앙선데이에선 중앙과 별도의 편집기자를 포함해 기자 30여명이 문화면 책코너와 외부기고를 제외한 주말판 36면을 전담하며, 동아에선 베테랑급 기자 10여명이 투입돼 28면 중 상당 양을 맡는다. 이마저도 고참 기자 각각이 한두 면씩을 차지하는 탐사·기획보도로 채워주기에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중앙일보 D기자는 “주말에 (데스크가) 최대한 연락하지 않으려는 건 분명 있다”면서도 “업무량이 줄지 않았다. 트래픽 빠지지 않게 온라인 출고 기사 수는 기존과 맞추고 주말용은 미리 발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휴무 전날엔 밤까지 기사를 잡고 있다. 주중에 일이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기존 관행에 대한 개혁, 업무체계 개선 없이는 요원
현재 모든 언론사 경영진의 바람은 ‘기존에 하던 걸 다 하면서 어떻게 개별 근로시간을 줄일지’로 모인다. 취재과정에서 추가 인력채용 의사를 밝힌 언론사는 없었다. 한 종합일간지는 계약직 미계약·공채시기 조정으로 정원을 299명으로 유지, 구성원들로부터 “시간을 벌기로 한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50인 이상 299인 이하 기업은 2020년부터 법 적용을 받기 때문에 다른 회사 움직임을 지켜보며 대응이 가능하다.


인력채용이 마지막 선택지라면 기존 방식과 다른 업무체계 변화, 성과·목표 조정 말고는 방법이 없다. 당연시 해온 주6회 발행조차도 고민의 대상으로 삼아봐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 부산일보는 지난 2015년 12월부터 목·금요일자를 증면하는 대신 토요일자를 내지 않고 있다. 부산일보 E기자는 “토요일자엔 광고가 잘 붙지 않아 경영상 판단을 했던 걸로 안다”며 “‘금·일요일 중 휴무를 정해 쉰다.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52시간 준수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토요판팀 등을 운영 중인 종합일간지에선 보통 이보다 적은 인원이 배정돼 있다. 편집국 ‘이원 운영’을 위해선 이들 부서에 더 많은 인원 보충과 더 많은 업무할당이 전제조건이다. 일정 규모가 되는 중앙·동아는 기자 1인이 주당 5번 신문을 만드는 시스템 변화를 감행하면서도 독자가 체감하는 변화를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이보다 작은 매체는 더 과감한 판단이 절실해 보인다.


서울지역 종합일간지 경영파트 F실장은 “광고상황이 매일 토요일 같다면 대부분 문 닫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주6회를 발행하고 일요일자를 안내는 현재까지 월요일자를 안 내거나 일주일 내내 발행하는 시기를 거치는 변화가 있었다”며 “일을 줄이고 휴식을 늘리는 사회 전반 흐름에 언론사 의식이 따라갈 수 있느냐 문제라 본다. 기존 생각에 갇히면 강제로 떠밀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차례 갱판을 하는 모습도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터넷매체 G기자는 “24시간 온라인으로 뉴스가 나오고 독자는 거의 실시간으로 본다. 밤10시 이후까지 인력을 남겨 신문을 고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냥 자기만족 아닌가”라고 했다.


기자들 인식...언론사 노사는 어느 선에서 합의할지
법 시행을 앞두고 언론사 노사는 ‘근로시간 축소’와 ‘시간외수당 감소’를 쟁점으로 협의를 할 소지가 크다. 다만 법 취지에도 불구하고 언론 현실에서 향후 협의는 후자에 방점이 찍힐 가능성이 높다. 노동자로선 근로시간 축소를 바랄 수 있지만 기자로선 업무특성상 어느 정도 근로시간 초과는 불가피하다고 여기는 기자가 대다수고, 대신 근로시간 축소에 따른 임금 감소를 보전하려 할 것이란 의미다. 법을 의도적으로 어긴다는 것이 아니라 이는 언론계를 그간 유지해 온 방식에 가깝다. 실제 언론계에서 근로시간을 두고 문제제기가 있었던 건 최근 뉴시스 쟁의과정에서 근로시간 준수 투쟁을 한 사례 정도로 매우 드물었다.


이 같은 현실은 서면상으론 법을 지키지만 실제론 52시간 이내 근무를 하지 않는 협의 가능성을 높인다. 예컨대 아직 정리된 안을 마련한 곳은 없지만 일부 언론사에선 사측이 노측에 ‘재량근로제를 하자’는 식의 의사를 전했다는 말이 들린다. 재량근로는 업무성격상 사용자가 시간배분이나 업무수행 지시가 어려울 때 근로자대표와 사용자가 서면합의로 정한 시간을 근무시간으로 간주하는 것을 뜻한다. 현행법상 이미 재량근로 대상인 기자에 서면합의를 요구한 것은 서류상 법 준수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기자들 실제 근로시간이 축소되리란 보장은 없다. 언론사는 기존에도 재량근로 대상이던 기자들을 별도 서면합의나 정확한 노동시간 산정 없이, 근기법 위반 일상 속에서 근로시켜왔기 때문이다.


다만 노사 합의가 되더라도 실제 주 52시간을 초과하면 사업주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나이브’하게 합의가 이뤄질 경우 해당 언론사는 언제고 ‘걸면 걸리는’ 사업장으로 남을 수 있다. 종합일간지 H관계자는 “언론사는 정말 안 걸릴까. 법 시행 후 첫 위반 케이스로 걸리면 정말 큰일 날 수 있다. 한샘 같은 곳은 성폭력 문제로 고용노동부 조사를 받았다가 임산부 불이익 조치 등 추가 위반사항이 줄줄이 드러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장영석 언론노조 노무사는 “노측은 회사에 법을 위반하지 않고 취지를 살리는 안을 마련할 의무가 있다는 제안을 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방안을 제시할 때 위반 여부에 대한 의견서도 첨부해달라고 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며 “사건사고 시간을 정할 순 없지만 일상적인 취재문화를  오전9시~오후6시 사이로 바꿔나가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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