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7월19일, 서울중앙지법은 김갑돌씨(가명)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튿날 김씨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김씨는 “수사기관에서 어떠한 조사도 받지 않겠다”며 조사 출석을 거부했다. 이에 검사는 서울구치소장에게 “국가정보원에서 피의자 조사를 받을 수 있도록 인치해달라”는 협조 요청을 했다. 구치소 교도관들은 김씨를 조사실로 ‘끌고’ 갔다.
구속 수감된 피의자가 수사기관의 조사를 거부할 경우, 구치소에서 피의자를 강제로 끌고 와 조사하는 것이 가능할까. 답은 ‘그렇다’다. 2013년 대법원은 “구속영장 발부에 의해 적법하게 구금된 피의자가 피의자신문을 위한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으면서 수사기관 조사실에 출석을 거부한다면, 수사기관은 그 구속영장의 효력에 의해 피의자를 조사실로 구인할 수 있다”고 봤다.
구속영장은 기본적으로 공판정에의 출석이나 형의 집행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지만, 구속기간의 범위 내에서 수사기관이 피의자신문의 방식으로 구속된 피의자를 조사하는 등 적정한 방법으로 범죄를 수사하는 것도 예정하고 있다는 게 법원의 논거였다.
7년이 지나 김씨 사건과 꼭 닮은 사건이 나왔다. 2018년 3월22일, 서울중앙지법은 이명박 전 대통령(77)에 대해 110억원대 뇌물 수수와 340억원대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튿날 이 전 대통령은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됐다. 이 전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는 것은 무망하다”라며 어떠한 조사도 받지 않겠다며 조사를 거부했다.
유사한 상황이었지만 검찰의 대응은 김씨 사건과 달랐다. 이 전 대통령을 조사실로 끌고 가기는커녕 세 차례 서울동부구치소로 찾아가 방문조사를 시도했다. 설득에는 실패했다. 구속기간 중 추가 조사를 못한 채 기소할 가능성이 크다.
피의자가 수사기관의 피의자신문에 출석해서 진술을 거부하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정당한 방어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반면 구속 상태에서 수사기관 출석 자체를 아예 거부할 권리, 이른바 ‘조사 거부권’은 현행법상 규정돼 있지 않다. 적어도 법원과 검찰은 김씨에게는 이러한 권리가 없다고 봤다. 김씨는 그래서 조사실로 끌려갔다.
그런데 전직 대통령이라는 사회적 신분엔 조사 거부가 가능한 특권이 주어지는 모양이다. 이 전 대통령은 구속 이후 조사를 계속 거부하고, 검찰은 그에게 매달려 조사를 받아달라고 설득하고 있다. 한 전관 출신 변호사는 “일반 사건 피의자 이른바 ‘잡범’이 이 전 대통령처럼 검사를 대면하는 걸 거부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당장 조사실로 강제 인치됐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같은 상황이지만 다른 처우다. 김씨를 떠올리며 쓴 입맛을 다시는 서초동 변호사들이 한둘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