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부패와 전쟁'서 승리할 수 있을까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브라질 코스트’라는 말이 있다. 흔히 브라질 시장에 진입해 활동하는 기업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를 의미하지만, 법·제도의 미비와 잘못된 관행에서 비롯되는 불합리한 행태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브라질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고 중남미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라틴아메리카 코스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코스트의 뒤에는 고질적인 부패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중남미 최대 규모 건설업체인 브라질의 오데브레시는 지난 2001년부터 중남미 각국에 엄청난 규모의 뇌물을 뿌렸다. 건설 프로젝트를 유리한 조건으로 따내기 위한 것이었다. 오데브레시가 중남미 9개국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제공한 뇌물은 3억8620만 달러, 우리 돈으로 4000억원이 훨씬 넘는다. 특히 페루에서는 2005년부터 2014년까지 4명의 전직 대통령에게 2900만 달러를 줬다. 오데브레시의 뇌물이 중남미 대륙을 뒤흔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패 스캔들은 브라질 정·재계도 발칵 뒤집어놓았다. 사법당국은 2014년 3월부터 4년 넘게 ‘라바 자투(Lava Jato) 작전’으로 불리는 권력형 부패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 수사는 국영에너지회사 페트로브라스가 장비 및 건설 관련 계약 수주의 대가로 오데브레시 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정황이 포착되면서 시작됐다. 수사를 통해 정·재계 유력 인사들이 돈세탁과 공금유용 등 혐의로 줄줄이 유죄 판결을 받고 있다.


중남미를 휩쓴 부패 스캔들의 진원지인 브라질과 부패 스캔들로 초토화된 페루는 뒤늦게 반부패 협력을 외치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4월 13~14일 페루 수도 리마에서 열리는 미주정상회의 폐막 성명에 반부패 협력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자고 제의했다. 중남미 각국이 사법당국의 부패수사에 협력하고 정기적인 반부패 회의 개최, 반부패법 제정 등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페루 정부는 ‘부패 척결을 위한 민주적 거버넌스’를 이번 정상회의의 주요 의제로 삼았다.


그러나 부패의 뿌리가 쉽게 뽑힐 리는 없다. 이 때문에 선거를 통해 부패에 취약한 정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중남미인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중순 브라질 상파울루 시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중남미 회의 ‘라틴아메리카 파노라마’ 포럼에 패널로 참석한 전문가들은 부패 문제가 올해 중남미 각국의 대선 결과를 가름할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부패 스캔들이 법과 제도를 위기에 빠뜨리고 정치에 대한 환멸과 불신을 키웠지만, 부패 때문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대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패널로 나선 이사벨 데 알바라도 파나마 부통령이 “부패 문제가 공론장으로 나왔다는 것 자체가 좋은 뉴스”라고 한 것은 이런 기대감을 반영한다.


중남미에서는 올해 브라질, 멕시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파라과이 등에서 대선이 치러진다. 좌-우파 후보 간에 팽팽한 대결이 예상되면서 정치 지형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중남미는 개혁과 변화의 흐름에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는 주문을 국제사회로부터 받고 있다. 그 핵심은 부패의 고리를 끊어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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