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집에 가지 않는다

[언론 다시보기] 구정은 경향신문 정책사회부장

구정은 경향신문 정책사회부장.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란의 여성 인권변호사 시린 에바디는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는 투사다. 하지만 그 자신이 1970년대에는 지금의 이란 체제를 만든 이슬람혁명에 동조했다.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이지만,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행한 대부분의 사회가 그랬듯 가부장적이었던 이란에서 에바디는 테헤란국립대학을 졸업하고 법관이 됐다. 회고록에 당시를 회상하는 내용이 나온다. 샤(국왕)를 비판하는 공개성명에 이름을 올린 그에게, 이슬람주의자인 남성 법관이 묻는다. 혁명 뒤의 국가에서는 당신같은 ‘여성’들의 자리가 없을텐데 왜 이 혁명에 동참하느냐고. 에바디도 이를 몰랐을 리 없지만, 그럼에도 당시의 거대한 불의에 맞서는 길을 선택한다.


예상대로 혁명은 여성 판사 에바디를 법정에서 내몰았다. 혁명은 어떻게 사람을 배반하는가, 그 뼈아픈 스토리는 이란 이슬람 혁명에만 국한된 일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모든 혁명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역사의 수레바퀴를 밀었던 사람들을 치이고 지나며 배반하는 것이 아닐까. 혁명에 성공한 ‘남성’들은 “이제 여성들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여성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중요한 ‘정치적인 문제’들이 많이 있다고, 지금은 사소한 것들을 얘기할 때가 아니라고.


마초이즘. 스페인어로 하면 ‘마치스모’다. 정치경제사회구조의 모든 면을 근육질로 채웠던 라틴아메리카가 마치스모의 본산이다. 나라마다 장군들이 득세해 총칼로 시민들을 억누르고, 짓밟고, 납치해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던 시대. 보수 가톨릭과 결탁한 독재정권이 집권한 곳에서 여성들의 자리는 없었다. 군인들의 정권은 남성 중에서도 가장 마초적인 이들로 채워졌고, 종교권력은 임신과 출산과 육아까지 일상을 하나하나 통제했다.


독재에 반대한 여성들은 잡혀가고, 남편과 자식을 잃었다. 그 와중에도 어머니 모임을 만들고, 군부가 빼앗아 군인들에 나눠준 반체제 인사들의 아기 즉 ‘잃어버린 아이들’을 찾아 나서고, 지하 연락망을 돌리고, 질식해가는 민주주의의 숨통을 이어가는 역할을 했다.


세상이 바뀌고,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은 다시 거리로 나섰고 남미 특유의 공동체주의 실험에서 큰 몫을 했다. 여러 나라에서 독재와 싸우며 힘을 갈고닦은 진보적인 여성 지도자들이 집권을 했다.


사회 전방위에서 지위 고하와 위계질서를 역전시키려는 저항이 거세게 일어날 때 그것을 혁명이라 부른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과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을 거치는 사이 곡절을 거듭했던 정치적 민주주의 의제들의 귀결점이 촛불혁명이었다면, ‘일상의 모순’을 뚫고 나온 것이 미투혁명이다. 여성들이 일상의 모순을 드러내고 외치는데 한쪽에선 여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한쪽에선 음모론 운운하며 “더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덜 중요하다고 만든 삶의 여러 문제들이 터져 나오면서 세상은 바뀐다. 여자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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