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도 '우물 안 개구리' 재연될까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손재권 매일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

손재권 매일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 “실리콘밸리에서 잘 나가는 블록체인 기업 좀 소개 해주세요.”


글로벌 혁신의 진원지라 불리는 실리콘밸리에서 특파원으로 재직하다 보니 직간접적으로 현지 회사나 인재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대부분 기업 방문이나 주요 인사 미팅 섭외를 요청하는 것이다. 다만 주제가 시기에 따라, 유행에 따라 바뀔 뿐이다. 지난 2016년엔 창조경제 기업이었다가 지난해엔 인공지능이나 4차산업혁명, 최근에는 블록체인으로 바뀌었다. ‘잘 나가는’ 기업의 기준도 없고 왜 만나는지에 대해서도 불명확한 편이다. ‘배우고 싶다’는 열정은 가득하지만 무엇을 배울지,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구상은 부족하다.


올 들어 블록체인 기업을 (취재해달라는 것이 아닌)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한국에 블록체인 비즈니스가 녹색성장, 창조경제, 인공지능, 4차산업혁명 등과 같은 ‘뜨는 아이템’이 되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한국에 가보진 않았지만 페이스북 피드, 메일함에 쌓이는 보도자료 등을 통해 블록체인 비즈니스에 대한 열기를 느낄 수 있다. 한국에서도 암호화폐공개(ICO)를 통해 자본을 조달하겠다는 회사도 많고 대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 가리지 않고 많은 블록체인 관련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빗썸이나 업비트, 아이콘(ICON) 같은 회사는 해외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다. 블록체인의 ‘잘나가는’ 기업을 찾으려면 한국에서 찾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어쨌든 해외 선진 사례를 찾아가는 ‘배움의 열기’가 있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모두가 실리콘밸리에 올 때 일회성 방문이 아닌 지속적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싶어하고 네트워크를 쌓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선 시간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현지 사정’에 녹아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꿈은 ‘세계정복’이지만 행동은 일회성이다. 하고 싶은 일은 세계적 기업을 만드는 것이지만 현실은 당장 출장 계획서 만드는 일에 허덕인다.


네트워크를 단숨에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관계자들이 많이 오는 전시회나 콘퍼런스에 나가기도 하고 네트워크 행사에 참여하기도 해야 한다. 콘퍼런스 이후에 개최되는 ‘밋업(meetup, 참석자들끼리 하는 애프터 파티 형식의 네트워크)’에도 가서 명함을 돌려야 한다. 그 이후에 목적에 맞는 ‘맞는 사람(right person)’을 찾아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관계를 형성하고 비즈니스 얘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블록체인 비즈니스는 실리콘밸리에도 뜨거운 주제여서 거의 매주 이벤트와 세미나, 밋업이 개최된다.


그러나 지난 2~3개월간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ICO, 토큰경제학 관련 블록체인 콘퍼런스, 전시회에 한국인이 기조연설을 한다거나 세션 발표를 한다거나 심지어 전시를 하는 기업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한국 기업이나 창업자도 드물고, 애프터 파티에 참가하는 한국인은 더욱 찾기 어려워 아쉬운 적이 많았다. 정부 지원이 없으면 전시회에 나가지 않는 관행은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다. 블록체인 기술 관련 영향력 있는 인사에 순위권에 드는 한국인도 없는 실정이다.


굳이 블록체인 사례를 드는 것은 분산화, 탈집중화가 특징인 블록체인 비즈니스는 태생부터 국경이 없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술의 대표 활용 사례인 비트코인도 ‘국경 없고 수수료 없는 화폐’를 지향하며 탄생했다.


‘눈에 띄는’ 블록체인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취재해보면 이들은 국적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본사와 창업자, 핵심 비즈니스의 국경이 각각 다르다), 팀 구성이 다국적 멤버로 돼 있다는 점, 현존하는 문제 해결에 중점을 두고 반짝 아이디어 보다는 기술 혁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블록체인 프로젝트 다수는 글로벌을 지향하지만 실행은 ‘국내용’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특히 얼마나 ‘내적 글로벌화’에 치열한가 묻고 싶다.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도전하고 있는지, 해외 로드쇼에 스스로 자신있게 나설 수 있는지 질문하고 싶다. ICO를 통한 자금 조달에 대한 관심만 높고 ‘문제 해결 및 실행’은 뒷전으로 밀린 것은 아닌지도 우려된다. 때문에 블록체인 비즈니스에 대해 취재할 때마다 한국의 ‘우물안 개구리’ 고질병이 재연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맨 위로